'군데렐라" 이정협 "꿈도 못꾸던 장면, 얼떨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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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축구대표팀 공격수 이정협(24·상주 상무·사진)은 A매치 데뷔전에서 골을 넣어 하룻밤 사이에 스타가 됐다. 현역 군인이기에 ‘군데렐라(군인+신데렐라)’란 별명도 생겼다.

 지난 4일 사우디아라비아와 평가전 후반 추가시간에 골을 터뜨려 2-0 승리를 이끈 이정협은 하룻새 달라진 위상을 실감했다. 5일 호주 시드니 매쿼리대학교 운동장에 대표팀의 회복훈련을 보러 온 500여명의 교민 중 상당수는 이정협의 이름을 외쳤다. 사인 요청도 줄을 이었다. 손흥민(23·레버쿠젠)·기성용(26·스완지시티) 등 기존 대표팀 스타 못지 않은 인기였다. 팬들의 관심에 이정협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대화를 해 보니 이정협은 몹시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었다. 이정협은 5일 “한달 전만 해도 꿈도 못 꾸던 장면이다. 정말 모든 게 신기하다. TV에서만 봤던 형들과 같이 뛰는 것만도 신기한데 골까지 넣다니 얼떨떨할 뿐”이라고 말했다. 육군 상병인 그는 ‘군데렐라’라는 별명에 대해서도 “과분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니까 기분 좋다”고 말했다.

 이정협이 데뷔전에서 골을 넣자 코칭스태프와 동료 선수들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울리 슈틸리케(61) 대표팀 감독은 악수를 건넸고, 손흥민은 “형! 신데렐라!”라며 박수를 쳤다. 박건하(44) 코치는 “정협이가 골까지 넣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정협은 지난해 1월 이름을 고치고 군에 입대한 뒤 일이 술술 풀렸다고 했다. 2013년 프로에 데뷔한 뒤 27경기에서 2골에 그쳤던 그는 이름을 이정기(李廷記)에서 정협(庭協)으로 바꿨다. 원소속팀 선배인 부산 이원영(34)이 이름을 바꾸고 주장까지 맡은 걸 보고 개명을 결심했다. 이름에 들어간 한자(協)의 뜻처럼 상주에서 동료와 협력하는 이타적인 플레이를 한 이정협은 지난달 슈틸리케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이정협은 “개명한 뒤 좋은 기운을 얻고 삶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입대 이후엔 더 부지런해졌다”고 말했다.

 대표팀에 뽑힌 이정협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박건하 코치는 지난달 제주 전지훈련에서 “공격수는 골로 말해야 한다”며 이정협에게 적극적인 자세를 주문했다. 박 코치의 조언을 받아들인 이정협은 지난달 21일 연습경기에서 골을 터뜨렸다. 승부욕도 커졌다. 지난달 31일 훈련 중 김영권과 부딪혀 콧등이 찢어졌지만 끝까지 훈련을 소화했다.

  이정협은 “군데렐라라는 별명을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인다. 아직 부족한 게 많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아시안컵 조별리그 1차전 오만전(10일)을 앞두고 6일 결전지인 캔버라로 이동했다.

캔버라=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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