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민족의 힘으로 푼 소수민족의 "비극"「10년 살인누명」벗은 이철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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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0년동안 감옥살이 끝에 재미동포들의 도움으로 보석으로 풀려나게 된 이철수씨는 『무엇보다도 우리말을 잊은게 가슴아프고 제일 안타깝습니다』고 말했다.
20세에 살인누명을 쓰고 종신수가 되었고 옥중살인으로 사형수가 되었다가 몇차례 재판의 번복으로 꼭 10년만에 미결수로 나오게 되었지만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못하는 그를 도와준 동포들에게 송구스럽다고 했다.
『10년 감옥생활중 8년동안은 내내 독방에서만 있었습니다. 직업훈련이나 교육이라고는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는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깥세상에 나가더라도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피부색깔이 노랗다고해서 불량소년 취급을 받고 결국은 살인누명까지 쓰고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했던 이철수 케이스는 미국내 소수민족과 이민자의 비극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래서 본철수의 구명운동에는 재미 한인동포뿐만 아니라 일본·중국계도 소수민족공동의 문제라고 합세해왔다.
이철수씨에게 처음 25만달러의 보석금이 결정되자 그를 하루라도 빨리 자유의 몸이되게 하기 위해 뜻있는 인사들이 다투어 자기집을 담보로 내놓고있다.
이중에는 6년째 이철수 후원회 회장직을 맡고있는 유재건 변호사, 이철수씨의 10대때 친구로 이철수씨 때문에 변호사가 된 일본인 2세 「야마다」(산전난향)양 등이 포함돼 있다.
11만 8천 달러로 보석금이 경감되어 29일 석방된 이철수씨는 『보석이 되어 나가더라도 무죄로 나가는게 타운의 「입·이·탁」이 살해됐을 때 백인 목격자가 경찰의 불량배 사진첩에서 이철수씨를 지목해버려 그냥 범인이 돼버렸다.
이철수와 동갑인 당시 2O세의 일본여성 「야마다」가 신문기사를 읽고 동분서주했다.
이철수씨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 「야마다」는 변호사를 사려고 했으나 요구하는 3천달러 중 1천달러만 마련되고 2천달러가 마련되지 않아 거절당했다.
자신의 힘이 너무 미약하고 소수민족이 억울하게 당하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야마다」는 이때 변호사 공부를 하기로 결심, 2년전에 드디어 변호사가 됐다.
종신형을 받은 이철수씨는 첫 사건이난 4년후인 77년 듀얼 교도소에서 복역 중 또 한차례 살인사건에 말려들었다.
같은 복역수인 백인 캥 두목「모리슨·리드혁」을 칼로 찔러 죽인것이다.
이철수씨는 이 사건을 정당방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감옥 안에서 다른 죄수의 어깨를 잡아챈다는 것은 죽이겠다는 뜻입니다. 마침 상대방이 칼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칼을 빼앗아 찌른것 뿐이었습니다』
이철수씨는 옥중에서 이 정당방위의 사건이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게 제 1사건의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그냥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회고했다.
사건이 난 후에야 재미동포들이 알게되고 구명운동이 일어 전국 누명을 벗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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