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비행에도 단정한 자세 지키던 교장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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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가 이미 자식을 낳아기르는 어른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어머니앞에서는 언제나 작은 딸일 수밖에 없듯이
옛날 학교시절의 은사앞에서면 나는 언제나 수줍고 하얀 여학생이 될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무슨 인연일까.
뉴욕으로 가는 17시간의 긴비행을 나는 우리 여학교의 교장선생님과 나란히 가게 되었다.
그것도 바로옆좌석에 나란히 앉아서.
그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유학을 하기엔 결코 이르지 않은 나이로 설레임과 초조함속에 뉴욕행 비행기를탔다.
아이들을 곁에 앉히고 나도 그옆에 안전벨트를 죄고 앉았는데 다행하게도 옆자리가 비행기 출발직전까지 비어있었다.
가다가 피곤하면 그자리에 누울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조금후 아주 낯익은 할머니 한분이 어느 청년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바로 그 좌석을 찾고 있었다.
바로 나의 여학교때의 교장선생님이셨다.
나를 많이 사랑하셔서 후에 내가 모교에 봉직할수 있도록까지불러주셨던 교장선생님.
그러나 여전히 어렵고 높은 교장선생님일 수밖에 없는 분이셨다.
나는 나도 모르게『아이쿠, 17시간 단단히 벌서게 되었구나!』하고 반가움과 실소를 같이 머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단속하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아이들은 처음 비행기 타보는 흥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얌전을 부렸고 엄마의 교장선생님 앞에서 말도 조용조용히 했다.
비행기안의 17시간은 기실지루하고 먼 고역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얌전했지만 우리 가족은 차차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다리를 비비 틀었고 음악을 껐다 켰다 했으며 억지 잠을 청하기도 했다.
나는 비행기안 영화에서 키스신이 나오면 애써 한눈도 팔았다.
비행시간 10시간이 지나자 차차 우리가족은 하나의 감동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이미 일흔을 바라보는 고령의 할머니인 교장선생님의 너무도 의연하고 흐트러질줄 모르는 단정한 자세때문이었다.
그 오랜 시간을 처음의 모습 그대로 앉아 성경을 읽으시는가 하면, 스튜어디스를 불러 물한잔을 청하시는 모습도 어찌나 품위있고 세련되어 있는지 저절로 모두들 고개를 숙이지 않을수 없는 모습이었다.
거기에다 사탕과 주스를 일일이 까서 내아이들에게 먹이시는 자애로운 사람에 아이들은 저절로 점잖아졌고 우리 세식구는 모두 행복해했다.
뭐든지 편한 것, 자유로운것만 좋은 것으로 길들뻔했던 나와 아이들은 그날 교장선생님의 그 모습으로부터 미국생활을 시작하는 좋은 행운을 얻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후 우리들에겐 이런 일이 일어났다.
9살난 딸에가 미국학교에 입학한지 3개월째 되던 어느 날이었다
학부형 면담시간이 있어 학교에 갔더니 미국선생님이 연신 감탄사를 말하며 아이를 칭찬하는 것이었다.
점심시간에 다 먹고 난 빈접시를 우리 아이가 냅킨으로 얌전히 덮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저애가 상류사회의 코리언인 것을 담박 알았다는 것이었다.
『너 어디서 배워 그렇게했니? 』
내가 너무 의외이고 기뻐서 이렇게 물었을 때 아이는 눈을 깜박이며 대답했다.
『교장할머니가 비행기에서 그렇게 하셨어』
◇약력▲1947년 전남보성생▲동국대국문과및동대학원졸▲현재 뉴욕대학수학▲1969년 월간문학신인상으로 문단데뷔 ▲1976년 제21회 현대문학상수상 시집<꽃숨><문정희시집><새떼>외 산문집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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