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훈의 끈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조치훈의 바둑은 「기록」을 낳고 「기적」을 낳았다.
3연패끝에 4연승의 대역전극을 필친 기성타이틀 획득의 순간은 그 사실을 모두 이야기해 준다.
기성전 6연패의 위업을 이룩한 58세의「후지사와」(등택수행)는 물론 일본바둑을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답게 기풍과 위세에서 단연 돋보였다.
그동안 교본, 가등, 우전, 임해봉, 대죽를 누론 그는 「괴물 등택」란 별명까지 갖고있다. 하지만 백전노장의 괴물도 조치훈을 이길수는 없었다.
괴물이란 별명은 오히려 조치훈에게 걸맞는 것이었다.
그것은 또 조치훈의 예언대로였다. 칫대국에 앞서 「후지사와」는『네판만 가르쳐주지』라는 오만을 보였지만 조치훈은 『세판만 가르쳐 주시지요』라고 맞받았다.
7번승부의 세판은 사실 승리를 결정하는데는 아무런 장애도 되지않았다.
조치훈은 이 기성타이틀 획득으로 일본의 4대타이틀올 모두 석권했다.
기성, 명인, 본인방, 십단위의 첫번째 동시보유.
그것은 4백년 일본바둑사를 통해 이룩된 첫 기록이다.
연간 기전수입 1억원 돌파의 신화도 아울러 창조됐다..
조치훈의 기성전도전자체가 벌써 기록이었다. 기성「후지사와」에게 지금까지 명인, 본인방타이틀 소유자가 도전해 본적이 없었다. 또 기사 인기투표 1위자가 도전자가 된적도 없었다.
조치훈은 줄곧 기록을 세우며 달려왔다.
11살의 나이로 입단한 것은 일본의 최년소 기록이었다. 해마다의 승단과정도 역시 최연소기록.
74년에 최연소 도전권휙득(제22기 일본기원 선수권전), 75년엔 최연소 타이틀휙득(프로 10걸전), 같은해 8강전 우승, 76년 왕좌전힉득. 79년 기성전 쟁취등 「신기록 제조기」의 별명도 들었다.
기록의 연장선위에서 새로운 기록은 계속해 나타났다.
4대타이를힉득의 기록도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매사 기록은 아니다.
일본바둑사를 뒤엎는 기록인 때문이다. 이른바 바둑세계의 「통일천하」 위업이다.
지금까지 일본바둑계엔 명인, 본인방 두타이틀의 동시석권으로「통일천하」를 구가하던 기룩은 있있다. 50년대의 면도날 「사까다」(판전영남)와 60년대의 중국인 천재 임해봉, 그리고 70년대의 컴퓨터 「이시다」 (석전방부)다.
그러나 이들은 조치훈의 통일천하와는 류가 다르다.
조치훈시대의 전도가양양하다는것도 하나의 강점이다. 그는 아직 26세. 더욱 믿음직한 것은 그의 바둑을 보는 눈이다.
「끈기와 힘」은 그의바둑을 설명하는 단어다. 하지만 그는 연전에 「무심과 인고의 조화」야말로 중요하다고 갈파한바 있다. 바둑판을「작은 세계」라고 표현하는 그는 거기서 벌써 달인의 경지를 살고있다.
통일천하이후의 그의 정진이 더욱 볼만해질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