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길육십년<12>승무 인간문화재 한영숙씨(63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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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나는 춤추기 위해 때어난사람입니다』
인간문화재 한영숙씨 (63·무형문화제27호 승무기능보유자)는 춤과의 짙은 인연을 이렇게 표현했다.
충남홍성의 시골에서 태어난 한씨지만 할아버지 (한성준)가 무용가로 서울에서 활약하고 있었기때문에 12세에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열고 전통무용의 체계화 작업을 해온 할아버지가 날렵한 모습의 손녀를 후계자로 택한것이다.
『승무란 템포가 너무 느립니다. 12살에 느린동작을 익숙하게 할수있었겠어요? 처음에는 짜증도나고 춤추기가 그렇게 싫을수가 없었어요』

<춤추기 위해 태어나>
한참 깡총거릴 나이에 질질끌리는 가락에 맞추어 춤춘다는것은 고역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그 친구들이 「잘한다」는 칭찬을 해 주고 신기한 선물들을 한아름씩 안겨주는 바람에 멋도 모르고 시작한 춤이었다고 했다.
무대에 선것은 14세.
아직 한사람의 완전한 춤판을 벌이진 못했지만 관중의 박수소리에 마냥 신이났다.
염불 타령·굿거리 당악의순으로 한바탕이되는 승무는 움직이면서도 움직이지 않는듯한 동작.
발을 바닥에서 10cm정도 들어 올리는데 1분가까이 걸리는 그 느린 동작에 익숙하는데는 2년이 넘어 걸렸다.
그만큼 승무는 어려운 춤이다.
『흔히 승무를 파계한 여승의 고뇌라 해석하고 있는데 우리전통승무를 증가에 결부시키는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그것은 동양인의 의식속에 짙게 깔린 무의 사상을 표현하는 무용이니까요』
한마디로 승무는 철학적인 무용이라고 설명한다.
『승무는 호흡의 춤이지요. 발을 바닥에서 떼는것부터 시작, 팔 동작까지 배우고 박자관념에 익숙해 진후 호흡을 맛추어야 합니다. 동작과 호흡이 일치했을 아름다움의 극치가 되는것이지요』
한씨는 춤을 출때야말로 머릿속이 무의 상태로 들어간다고했다.
어려서는 멋모르고, 자라면서는 잘한다는 자부심으로 춤을 췄지만 50이 넘어가면서 춤의 깊은뜻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조선음악무용연구소의 흥행실적도 좋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기전까지는 서울을 비롯, 전국순회공연에서까지 절찬을 받아왔다.
21세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후 연구소를 이어받았으나 전시여서 전통예술은 공연이 중단되고 말았다.
대신 위문단을 이끌고 일본을 비롯, 전지를 돌아다니며 한국에서 징용나간 군인들을 위로했다.
『그때까지는 갈채받는 예술인이란 오만이 내속에 도사리고 있었지만 이들의 위문공연을 하면서 예술의 소중함과 눈물을 알게되었습니다』
도라지타령 하나로도 출연자나 관중이 모두 눈물바다가 되었던 때였다고 설명해준다.
한씨는 이때 위문단의 일행이었던 아코디언 주자 황병렬씨(64)와 결혼했다.

<40년간 남편과 해로>
결혼후 아들하나를얻고 곧 잃어버렸다. 얻었다 다시 잃어버린다는데 대한 허무함.
한씨는 그이후 자녀를 갖지않았다.
그만큼 첫아기를 잃어버린 상처가컸다.
6.25후 국악인 김소희씨와 민속무용학원을 여는등 본격적인 전통예술보급에 나섰다.
수도녀사대·이대·서울예고등에서 후배양성을 하는 한편 인간문화제가된 69년부터는 전수자 이수자양성으로 한가할틈이 없었다.
『20여개국이 넘는 나라를 돌아다니며 공연을했는데 서양인의 한국춤에대한 이해가 아주 깊어요. 느림에 대한 이해. 요즘 무용인들이 승무를 현대화하여 박자를 빨리해야한다는 의견』에대해 한씨는 조심스런 반대의견을 내놓는다.
40여년을 해로해온 남편과는 친구와 같은 사이라고.
결혼이후 항상 물같은 존재로 옆에 있어준 그에게 새삼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김징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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