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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 품은 목조주택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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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는 사는 사람의 꿈이 담겨 있어 단순히 겉으로 보는 것만으로 전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20년 가까이 남의 집 고치고 짓는 일을 하며 살던 디자이너가 드디어 ‘내 집’을 지어 그 꿈을 담았다. 그녀에게 집은 ‘장만’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 집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다. 으리으리하지 않은 목조주택은 공간이 작은 덕분에 숨겨진 아이디어가 더 많다.

1 2층 서재에서 바라본 중정 풍경. 공간마다 높이가 다른 지붕은 이 집의 외관마저 특별하게 만든다. 창마다 지나는 구름이 그림처럼 걸려 중정 마루에 앉아 있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2 비스듬한 지붕이 다락방을 떠올리게 하는 아담한 목조주택의 전체적인 모습. 창문이 거의 없는 이 집의 채광이 어떻게 해결되는지, 현관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면 금세 알 수 있다.

3 집주인 김혜정 씨는 어릴 적 밟고 놀던 흙바닥이 생각나 중정에 흙을 덮어 손바닥 마당을 만들려다 참았다 한다. 대신 알고 지내던 선생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도기 작품을 군데군데 심어 중정 바닥에 표정을 더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손바닥 꿈, 목조주택

서울에서 1시간 남짓, 헤이리 지나 논밭 가로지르고, 낡은 군부대를 지나야 만날 수 있는 산자락 아래 시골 동네가 있다. 그 동네 끝자락에는 낮고 운치 있는 옛집이 몇 채 있었는데, 김혜정 씨를 만난 건 지난봄 그 낡은 집에서였다.

“곧 이 자리에 목조주택을 하나 지으려고요. 한여름 지나고 늦가을에 한 번 오세요. 아담한 2층 집 하나 완성되어 있을 거예요.” 그녀가 그 당시 살고 있던, 마당이 있고 너른 창고가 있는 시골집도 맘에 들었는데, 그 자리에 지어질 목조주택은 감히 그림도 그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었고, 거짓말처럼 몇 달 만에 집이 완성됐다. 목조주택이 워낙 시공 기간이 짧은 것은 알았지만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가 아닌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김혜정 씨는 지난 20여 년 갈고 닦은 솜씨를 이 손바닥만 한 시골 동네에 펼쳐놓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른 이의 공간을 꾸며주는 동안에는 집주인의 취향이 있으니 차고 넘치는 그녀의 감각을 다 풀어놓을 수 없었을 터. 소식을 전해 듣고 그녀의 집을 찾았는데, 겉에서 본 목조주택은 생각보다 심플했다. 장식도 없었고, 흔한 창문 디자인도 별스럽지 않았다.

집 안에 들어오면 오랜 세월 켜켜이 모아두었던 빈티지 가구와 소품들이 원래 자기 자리인 듯 자리를 잡았다고 전해 들었던 터라 더 궁금해졌다. 얼른 문을 열어젖히고 집 구경을 하고 싶어졌다.

1 모서리의 ㄱ자 모양 멋진 창문 디자인이 눈에 띄는 침실 풍경. 작은 창 외에는 어떤 장식도 없는 침실 벽이 오히려 공간을 멋스럽게 하는 포인트가 되었다. 침대 위에 펼친 베드 스프레드는 최근 그녀가 직접 뜬 작품을 모아 출간한 『집과 뜨개질』(F.book)에 소개된 작품 중 하나다.

2 현관 중문을 열면 나타나는 거실은 넓지 않지만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한다. 그동안 창고에 쌓여 있던 약장, 철제 의자 등의 오브제가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와 구석구석 빛을 발한다.

3 과감한 컬러 선택이 눈길을 끄는 침실의 자개장. 컬러가 맘에 들어 중고 제품을 업고 왔다가 리폼 비용이 더 들었다고 하소연하지만 침실 분위기를 업그레이드하기에는 손색이 없다.

4 현관을 지나 들어오면 중정을 사이에 두고 거실, 침실, 주방이 ㅁ자 모양으로 이어진다. 커다란 식탁을 갖춘 주방 맞은편 공간이 현관과 거실. 길게 난 복도 옆으로 방이 조로록 위치해 있다. 집 밖에서는 드러나는 창이 많지 않지만, 집 안에서는 중정 창을 뚫고 햇살이 가득하다.

중정과 대들보, 한옥 감각을 살린 현대식 건축

창문 수를 줄이고 외관을 최대한 심플하게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내부에서 채광을 해결할 수 있도록 집 한가운데에 중정을 디자인한 것. 목조주택 조감도를 상상해보면 ㅁ자 안에 ㅁ이 있는 셈이다.

중정을 중심으로 거실, 주방, 각 부실들이 이어져 있으니 집 전체에 햇살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무엇보다 중정은 일반 아파트의 베란다 겸 단독주택의 마당 구실을 하는 공간으로 여름엔 아이들 물놀이를 하기에도 그만이고, 온통 볕이 가득해 빨래를 널기에도 이만한 공간이 없었다.

다른 모든 공간이 새롭지만,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주방이었다. 공간이 그리 넓지 않은 점을 감안해 일자로 싱크대를 배치하고, 그 앞에 병렬식으로 식탁을 두었다. 음식을 장만해 내기도 편하고, 무엇보다 중정을 내다보는 구조라 도란도란 손님 맞이하기도 좋은 공간이 된 셈이다.

그 와중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 점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마감재는 타일과 나무를 적절히 조화시켰고, 철제로 덮은 싱크대 문짝은 빈티지 소품들과 어우러져 더욱 멋스럽게 어울렸다.

주방에서 올려다보면 한옥 구조의 대들보를 볼 수 있는데, 높은 천장고를 자랑할뿐더러 대들보를 중심으로 다양한 펜던트를 배치해 주방이야말로 이 목조주택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완성되었다.

1 침실과 나란히 있는 또 하나의 부실은 맥반석 온돌방이다. 외부로 나 있는 아궁이에 전통 방식으로 장작을 때면 2~3일 동안 온기가 남아 있어 요즘 같은 계절에 게스트 룸으로 손색이 없는 공간이다. 내부 공간이 넓지 않은 것을 감안해 현관 중문, 방문은 모두 미닫이로 처리했다.

2 집 구경하러 온 지인들마다 들어서며 탄성을 지르는 공간인 욕실. 집 주인장의 감각을 온전히 쏟아부은 곳으로 타일이나 전체 구조는 물론 거울, 벽장, 세면대, 휴지걸이 하나하나 감각적인 오브제가 가득하다.

3 이 집의 백미인 주방 겸 다이닝 룸. 철제와 나무, 타일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공간으로 손님 접대는 물론 작업을 위한 장소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부실이기도 하다. 천장은 중정과 어울리도록 대들보 방식으로 디자인해 현대 가옥에 한옥의 운치를 살렸다.

4 싱크대 상부장을 떼어내고 나무 노루발에 나무 선반을 달아 차 도구 등 평소 자주 사용하는 물건들을 수납했다.

5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는 미닫이로 이동이 가능한 벽을 달아 파티션으로 사용하면서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손잡이는 물론 벽 장식 소품들 모두 김혜정 씨가 직접 디자인한 것들로 마치 갤러리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공간이다.

추억과 정성이 담긴 오브제들이 만들어낸 집 안 풍경

“최근 몇 년간 의류 매장 등 상업 공간을 주로 디자인하다 보니 주거 공간만 작업할 때보다 생각이 한결 유연해지는 것을 느껴요. 그 덕분에 최근 주거 공간을 인테리어할 때 많은 도움이 됐어요. 이 집은 모든 경험의 집합체가 아닌가 싶어요.

마침 집이 완성될 즈음, 손뜨개 책이 나와서 집 안 여기저기 온기가 가득하네요.” 감각은 하나로 통한다고 했던가. 의류 디자인을 전공하고, 인테리어 디자인을 업으로 하면서 손뜨개 책의 저자라. 어쩐지 다른 듯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것, 조화로운 것에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감각적인 컬러 매치와 다른 사람 눈에는 띄지 않는 보석 같은 물건들을 찾아내는 감각 등은 어쩌면 모두 한 라인에 있는 것들이다.

목조주택의 구조가 아이디얼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더 돋보이는 것은 집 안 구석구석 자리 잡은 소가구와 오브제, 갖가지 소품들의 조화로운 매치 덕분이었다. 주인을 찾지 못하고 창고에 쌓여 있던 보물들이 드디어 물을 만난 것이다.

좋아하는 것들 하나하나 모아 창고에 쌓아둔 보람이 있었다. 미닫이문의 손잡이 하나, 욕실의 세면대나 대들보에 매달린 작은 펜던트, 그리고 만든 이의 정성이 아니면 빛나지 않는 갖은 뜨개 소품들 모두 예사 감각이 아니었다.

여름내 뚝딱뚝딱 집을 지었으니 처음 맞는 겨울, 식탁에 앉아 눈 쌓이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신나는 일이라고 자랑하는 그녀. 소복이 눈 쌓인 날 다시 한 번 놀러가고픈 아늑한 집이다.

1 주거 형태로 아파트가 많다 보니 2층이나 복층 구조를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점에서 작은 목조주택의 계단은 설레는 기분을 주기에 충분하다.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기분은 다락방에 올라가는 것처럼 신나는 일이다.

2 계단을 올라서면 나타나는 곳은 작업실 겸 서재, 손님이 왔을 때는 게스트 룸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한다.

3 작업실은 다양한 오브제와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가득한 공간이다. 너르고 긴 창이 있고, 베란다로 이어지는 문이 있어 볕이 좋고, 중정을 내려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뷰가 가장 좋은 공간이기도 하다.

1 공사 현장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많은 김혜정 씨는 손뜨개에서 해답을 찾았다. 머리를 비우고 손을 쓰다 보면 잡념도 사라지고, 시간이 지나면 근사한 뜨개 소품을 건질 수 있으니 말이다. 집 안 구석구석에서 뜨개 소품을 만날 수 있다.

2 얼마 전 펴낸 손뜨개 책에 소개된 작품들이 집 안 곳곳에 걸려 있다. 거실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뜨개 소품은 그저 걸어두는 것만으로 운치 있다.

3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일 먼저 인사하며 반기는 그레이 컬러 벽면의 오브제. 보기 싫은 배전함을 가리기 위해 뚝딱 만들었다는데, 마치 갤러리의 작품인 양 멋스럽다.

4 어릴 적 할머니 옷장 같은 구식 장을 열어보면 여자들의 로망인 뜨개 블랭킷이 차곡차곡! 화려한 기술은 없지만 그녀만의 색 매치 감각이 빛을 발한다.

5 넓지 않은 거실엔 소파 대신 언제든지 가구 재배치가 가능한 의자, 스툴 등을 두었다. 거실 역시 외벽으로 난 창은 낮고 긴 창이 전부다.

6 단독주택을 짓는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내가 원하는 크기와 모양의 창을 가질 수 있다는 점. 길게 난 창 앞에 작은 공간을 만들어 무심한 듯 자신이 좋아하는 소품을 올려두면 따라 하고 싶은 멋진 데커레이션이 된다.

기획=이지현 레몬트리 기자, 사진=전택수(JEON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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