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죽어도 그 애틋함과 울림을 실감하지 못할 말 중 하나가 '친정 엄마'일 겁니다. 이 책은 코미디 작가가 그 친정 엄마에 관해 쓴 것입니다. 주부라면 누구나 한 자락씩은 풀어 놓을 수 있는 흔한 글감이지요. 그런데 감동과 눈물, 웃음과 통쾌함이 보통 아닙니다.
서울로 유학 간 딸의 용돈에 보태려고 어머니는 라면 봉지에 1원짜리 동전까지 모으고, 기차역에서 동전봉지를 두고 승강이를 벌이다 통곡하는 이야기엔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집니다. '남들은 딸의 작품이 재미있다지만 우리 딸이 저렇게 쓸라고 밤에 잠도 안 자고 고생했겠구나'하는 생각에 아예 TV를 보지 않는다는 대목에선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런가 하면 딸의 상사가 드라마에 상추 씻는 엑스트라로 출연하라고 제의하자 "출연료 십만원 벌라믄 얼마나 많은 상추를 씻어야겠소. 나 허리 디스크 있어 힘든 일은 못 허요"라며 거절하는 씩씩함에는 뒤집어지죠. 엄마 이름이 촌스러워 방송국 사람들에게 창피하다는 딸의 한 마디에, 서류에 침 발라서 싹싹 지우기 쉽게 이름에서 받침 하나만 뺐다며 서울 올라가 서류고치기를 채근하는 무조건적 사랑은 또 어떻습니까.
며느릿감으로 못 마땅해 하는 시댁 부모들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당차면서도 조리 있게 대거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재산이며 교양이란 것이 자식 사랑 앞에는 별로 힘을 못 쓴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지은이는 그런 엄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힘들 때 왜 날 낳았느냐고 원망해서 미안해… 늘 나 힘든 것만 말해서 미안해… 늘 내가 먼저 전화 끊어서 미안해… 괜찮다는 엄마 말 100% 믿어서 미안해… 내가 잘나서 행복한 줄 알아서 미안해… 엄마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건 엄마가 아니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참 심금을 울리는 책입니다. 어려운 말도, 예쁜 말도 쓰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친정 엄마의 힘일까요.
김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