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120년, 고대 100년 '고연전' D-3] 연대는 고적대, 고대는 농악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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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 3년 동안 승리하지 못한 연세대 축구부 선수들이 정창영 총장(가운데)과 함께 필승 의지를 다지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젊음의 열기가 넘치는 응원전은 정기전을 감상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정기전은 당연히 응원 문화도 주도했다. 연세대는 싱그러운 푸른빛을 주된 색으로 삼고 서구적인 느낌을 주는 응원을 한다. 반면 고려대는 강렬한 붉은빛을 즐겨 사용하며 박력 있는 응원으로 어필한다. 응원 문화도 시대마다 특징이 뚜렷했다.

1960년대 학번이라면 황만길이란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무려 11년간 연세대를 다닌 기인으로서 연세대 응원단장을 지냈다. 연세대 캠퍼스에 있는 언더우드 박사의 동상에 올라가 입에 담배를 물리고 술을 마시다가 방뇨를 하는 바람에 제적됐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정기전 응원을 맡기기 위해 징계를 풀어줬다고 한다.

연세대에서 응원 연습이 시작됐다는 소문이 돌면 주변 학교 학생들이 구경하기 위해 몰리는 바람에 강의실이 빌 정도였다. 황씨의 응원은 '원맨쇼' 같았다. 학생들은 응원보다 황씨의 개인기를 감상하는 느낌이었다.

황씨가 마침내 졸업한 뒤 아무도 그의 기량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집단 응원. 서너 명이 한꺼번에 지휘대에 올라 같은 동작을 취하면서 응원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때부터 소도구도 사용됐다. 앞뒷면 색깔이 다른 장갑을 끼고, 골판지 앞뒤에 다른 색을 칠해 사용했다.

60년대 응원가는 군가풍이었다. 네 박자의 씩씩한 노래여서 응원가로 적당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송창식의 '고래 사냥' 같은 포크송이 애용됐다. 80년대는 빠른 리듬을 사용한 노래가 인기를 모았다. 이은하의 '밤차', 인순이의 '밤이면 밤마다', 김수철의 '젊은 그대'가 히트했다.

고려대에는 연세대에서 부르지 않는 노래가 있다. '막걸리 찬가'다. 작자 미상의 이 노래는 '민족 고대'를 표방하는 이 학교 동문의 뜨거운 사랑 속에 고려대의 노래가 됐다. '마셔도 사내답게 막걸리를 마셔라. 맥주는 싱거우니 신촌골로 돌려라'는 배짱과 해학, '만주벌은 우리 것, 태평양도 양보 못한다'는 가사는 고대인의 기개를 표현한다.

연세대는 서구풍의 고적대, 고려대는 전통적인 농악대가 나와 흥을 돋우는 것도 학교의 기풍을 반영한 응원 모습이었다. 올해 정기전에서 연세대 응원단은 디스코 나이트클럽의 디제이들이 하는 식으로 음반을 돌려가며 희한한 음색과 리듬을 만드는, 힙합풍의 응원을 준비하고 있다. 고려대는 역시 한국인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박력과 패기로 승부한다.

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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