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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法대로"… 실력행사에 맥못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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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열흘 이상 계속된 물류 대란 해결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화물연대와 정부의 협상이 부분적으로 타결된 데다, 화물연대와 운송업계가 지역별로 이뤄지는 운송료 인상협상을 중앙 차원의 업종 대표간 교섭으로 바꿔 일괄 타결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발표된 합의안에는 물론 상식적으로 인정할 만한 내용도 들어 있다. 화물차 운전자의 편의를 위해 고속도로 상의 화물차 전용 휴게소를 늘리기로 한 게 대표적 예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면 문제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화물연대의 요구를 많이 수용했다. 이에 따라 이익단체가 집단행동에 나서 사회 문제가 되면 정부가 일단 대폭 양보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사실 정부는 이번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하자 뒤늦게 불법 행위자를 검거하고 강제해산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최근 열흘간 화물연대의 불법적 행동을 사실상 묵인해 왔다. 그런 다음 화물연대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만약 화물연대의 무리한 요구마저 수용할 경우 "두산중공업.철도청 분규에 이어 정부가 지나치게 밀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합의내용과 문제점=화물연대와 정부는 화물차에 한해 최고 50%까지 고속도로 통행료를 깎아주는 할인 시간대(0시~오전 6시)를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로 2시간 연장키로 했다. 그러나 이는 현재 13조원대의 부채를 떠안고 있는 도로공사의 통행료 수입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경우 정부에서 이를 보조해줘야 하기 때문에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화물 운송시장을 왜곡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되는 다단계 알선의 경우 12일부터 실태조사를 벌이고 단속도 강화키로 했다. 위반시 처벌도 기존의 과징금(3백60만원) 위주에서 사업정지 위주로 강화키로 했다. 지금도 적발시 과징금 처벌 외에 ▶1차 정지 20일▶2차는 정지 50일▶3차에는 등록 취소하도록 돼 있으나 실제 정지를 당한 사례는 거의 없다.

이에 대해 실제로 단속을 담당하는 지자체가 단속 인력을 대폭 늘리기 어려운 데다 다단계 알선의 경우 운송업자나 운전자들이 신고를 하기 전에는 찾기 어려워 효과가 작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다만 화물 운송업계 관계자는 "단속이 강화되고 제도가 개선되면 소규모 화물 주선업체들이 퇴출되는 등 시장이 많이 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과적차량 단속시 화주에 대한 처벌은 강화하되 운전자는 면책하는 방안을 강구키로 했다. 그러나 무조건 면책할 경우 운전자가 화주와 짜고 이를 악용할 소지도 있다.

한편 화주들도 화물연대의 요구를 속속 수용하는 분위기다.

한국철강 창원공장 가동 중단 사태를 빚었던 화물연대 경남지부의 운송거부는 12일 연대 쪽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상태에서 타결됐다. 핵심 쟁점이었던 운송비는 운송회사인 세화통운이 13.5%를 인상해 주고 중간 운송회사 등이 떼가던 알선 수수료.어음할인 수수료 14% 를 7%로 인하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지입 차주들은 실제로 23% 가량의 운송료 인상 효과를 얻게 됐다.

세화통운은 12일 새벽까지 19% 인상안을 고수했으나 화물연대 측의 요구를 결국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한 운송회사 관계자는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한 데다 힘이 세진 운전기사들을 어떻게 대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미합의 쟁점=현재 양측이 첨예하게 맞서는 부문은 ▶경유세 인하▶노동자성 인정▶ 근로소득세제 개선 등 크게 세가지다. 하나같이 현행 법체계나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하는 민감한 사안이다.

경유세 인하요구는 화물차에 대해서만 세율을 인하할 경우 업종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걸림돌이 가장 크다. 또 2001년 7월부터 화물차에 대해 세액 인상분의 50%를 보전해주고 있어 추가 인하는 어렵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근로소득세제의 경우도 제조업 저소득 근로자의 경우 초과근무 수입에 대해 소득세를 면제해주고 있으나 화물연대 지입 차주들은 사실상 특수고용 형태로 이같은 혜택을 주기 어렵다. 만일 이를 수용할 경우 학습지 교사나 골프장 캐디 등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된 다른 업종에서도 동일한 요구가 나올 수 있다.

노동 3권 보장도 이미 지입 차주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있는 상황이어서 사실상 받아들이기 어려울 전망이다.

김상진.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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