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유가시대의 우리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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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산유국의 석유 상들은 지금 국제 원유값의 경쟁적인 인하를 막아보려고 마지막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저 유가시대」의 도래는 기정사실로 굳어져간다.
남은 문제는 현재 배럴당 34달러로 되어있는 국제기준유가를 언제, 얼마나 내리느냐 하는 것뿐이다.
페르시아만 안의 일부 산유국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산유국들은 이미 유가인하와 산유량증가의 경쟁에 뛰어들어 고 유가시대는 앤티 클라이맥스를 넘어선지 오래다.
유가상승에 대한 반작용으로 대부분의 석유소비 국들이 석유소비를 줄이고,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고, 원유 비축량을 늘렸다가 그것을 방출하기 시작한 배경에서 보면 원유 값이 크게 내리는 것을 석유상들의 노력으로 막아 낼 수는 없는 일이다.
저 유가시대의 개막을 전제로 하여 우리의 관심의 초점은 국제원유가의 하락을 국내의 경제운용계획에 어떻게, 얼마나 반영할 것 인가다.
우리의 경제운용계획은 올 한햇동안에 유가가 현재의 수준을 유지하리라는 가정 위에서 짜여진 것인데, 실제로는 국제 원유값이 배럴당 적어도 4달러에서 7달러까지는 내릴 전망이다.
따라서 그런 폭의 유가인하가 국내 석유 가격과,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하여 생산하는 공산품의 가격이 하향 조정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서동자 부장관은 24일 해외의 원유가 인하요인을 50%만 국내유가에 반영하고 나머지는 석유안정기금으로 흡수하겠다고 밝혔다.
서장관의 이 발언은 정부가 원유가격의 하락에 따른 국내 유가의 인하폭과 기금의 흡수방안을 처음으로 밝힌 것으로 관심과 논평의 대상이 된다고 하겠다.
원유가의 하락을 국내경제에 반영시키는 정책의 핵심은 한편으로는 하락분을 국내유가와 공산품값의 인하에 산술적으로 직접 반영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하요인의 일부를 에너지 안정기금으로 흡수하여 언제 닥칠지 모르는 제3의 오일쇼크이 대비하는 조치간에 균형을 취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두 차례에 걸친 오일쇼크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경제가 원유가가 오르고 내리는데 거의 사활을 걸고 있다는 약점을 실감했다.
그런 의미에서 원유가 하락이라는 「과실」의 일부를 「비오는 날」에 대비하여 안정기금으로 남겨두자는 서장관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리경제는 지금 모처럼의 경기회복에 박차를 가할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모든 산업에 원가요인으로 작용하는 원유가의 하락이 그것이다.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하면 구조적으로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경제는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가 인하분의 50%이상을 에너지안정기금으로 흡수한다는 데는 그 폭이 너무 크다는 인상을 받는다.
에너지안정기금이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라 흡수비율이 너무 높다는 얘기다.
지금 당장 급한 과제는 경기회복과 수출증대다. 유가하락으로 인한 원가요인의 절감은 대외적으로는 국제경쟁력을 기르고 안으로는 경기를 회복시키는 최선, 최대의 촉진제다.
물론 벙커C유를 포함한 수출관련 유가는 대폭 내릴 것으로 기대 된다. 그러나 그밖의 유종에서 안정기금을 떼어내는데도 그 비율은 신중하게 정해야할 것이다.
그럴 경우 국제원유가가 장기적인 안정추세에 들어서고 있다는 현실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의 수출경쟁국들, 다른 석유 소비국들이 원유가 하락을 그들의 국내경제정책에 어떻게 반영시키는가를 면밀히 지켜보고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고 안 닥칠지도 모르는 불행을 반드시 닥칠 것이라고 단정하고 불안해하는 것이 비관논의 정의의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조심스러운 낙관위에서 원유가 하락에 경제운용계획을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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