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은행이 달라졌다 … 부패 정치인 '검은돈' 그 나라 국민에 반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스위스 은행이 예치하고 있던 한 아프리카 독재자의 '검은돈'을 모두 그 나라 국민에게 돌려주기로 했다고 프랑스 일간 르몽드가 15일 보도했다. 스위스 법원이 9일 나이지리아의 독재자 사니 아바차 사후 동결돼 있던 그의 예금을 몽땅 나이지리아 정부에 돌려주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아바차가 1994년부터 98년까지 집권하는 동안 스위스 은행으로 빼돌린 돈은 6억1800만 달러(약 6200억원)로 추정된다.

아바차는 집권 중 중앙은행에서 약 22억 달러를 빼돌렸다. 그는 이 돈을 스위스 외에 영국.프랑스.룩셈부르크.리히텐슈타인 등 여러 나라 은행에 나누어 숨겼다. 98년 그가 갑자기 숨지자 나이지리아 정부는 그의 검은돈 찾기에 나섰다.

나이지리아 정부의 요청에 따라 스위스 은행은 아바차의 것으로 추정되는 예금을 모두 동결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가족 동의 없이는 돈을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횡령 혐의로 구속된 아바차의 아들 모하메드와 협상을 벌였다. 정부는 모하메드에게 "스위스 은행에 있는 돈을 나이지리아 정부에 돌려주라고 하면 그중 1억 달러를 주고 바로 석방해 주겠다"고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모하메드는 거절했다.

99년 나이지리아 정부는 직접 스위스 법정에 호소하기로 했다. 제네바 법원에 반환 청구소송을 낸 것이다. 스위스 법원은 나이지리아 정부로부터 받은 자료로 아바차의 돈이 불법으로 조성됐음을 확인했고, 스위스 은행에 계좌와 관련된 서류 제출을 요청했다. 1차로 불법자금임이 확인된 8800만 달러가 2003년 나이지리아 정부로 반환됐다. 그리고 9일 나머지 전액을 돌려주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스위스 은행이 이례적으로 고객정보 공개와 예금반환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인권존중 정신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독재자가 빼돌린 검은돈을 모두 국민 복지에 쓰겠다고 다짐했다.

스위스 법무부는 세계은행으로부터 "반환된 모든 돈이 국민 복지를 위해 사용되는 것을 확인하겠다"는 일종의 보증서까지 받았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스위스 외에 2003년 영국계 저지은행에서 1억4900만 달러를 돌려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영국의 다른 은행이나 다른 나라 은행들은 아직도 아바차 비밀예금 반환에 부정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