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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 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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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국민-. 적어도 통계상으로는 한국인이다. 경제기획원이 조사한 80년도 사회지표에 따르면 제조업부문의 주평균 근로시간은 53·1시간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평균 8시간 가까이 일하는 셈이다.
주5일, 하루 6시간 남짓 밖에 일하지 않는 덴마크 사람들에 비하면 보통 일 벌레가 아니다.
근면을 둘도 없는 미덕으로 아는 일본사람도 주 41·2시간 일한다. 우리보다 11시간이나 적다. 우리와 함께「아시아의 새끼 호랑이」로 불리는 싱가포르 역시 50시간 이하인 48·6시간.
그러나 노동을 면, 하나만으로 따지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오늘의 산업사회를 이겨 나가려면은 못지 않게 노동의 질이 문제다.
언젠가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일본 기업이 왜 강한가』를 특집하면서 그 원인을 다섯가지로 분석했었다. 첫째는 악착같이 일하는 근성을 꼽았다. 둘째는 의견통합, 세째는 미래지향성, 넷째는 품질관리, 끝으로 경쟁의식.
미국의 기업인들은 일본의 공장에 써 붙인『협력』『책임』『목표달성』 이라는 슬로건을 보고『보이스카웃 같군요』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아뭏든 이런 것이 바로 노동의 질을 강하게 만드는 조건도 된다.
어떤 통계를 보면 일본의 근로자들은 자신에게 배정된 휴가 일수 가운데 40%밖에 쓰지 않는다. 나머지는 자진해서 반납하거나, 그 시간을 회사에 맡겨 둔다.
이런 상황은 가령 전자산업의 경우 똑같은 여건에서 미·일 두나라 사이의 생산성 비교에 무려 15%의 차가 벌어지게 한다.
한때 일본과 비슷한 나라였던 독일은 요즘 노동의 양과 질에서 전부 뒤떨어져 가고 있다. 「라인강의 기적」을 노래하던 60년대 후반에 비해 지금은 노동시간이 주 2시간 가까이 줄었다.
그 무렵 『일하는 시간이 가장 보람있다』고 하는 사람이 60%나 되었다. 이제는『노는 것이 즐겁다』는 사람이 50%다.
이런 풍조는 당장 경제에 그림자를 던져주고 있다. 지난 79년부터 서독은 국제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그 한 예로 서독인들이 외국에서 관광여행에 쓰는 돈이 2백억 달러인데 비해 외국 관광객이 서독에서 쓰는 달러는 1백억 달러. 이것은 서독의 GNP를 마이너스 1·3%로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예사로 보아 넘길 수 없다. 부지런히 일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우리의 값진 미덕이다.
그만큼 일한 보람이 오늘의 경제성장을 뒷받침했다. 그 점에선 10년여일, 한결같았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는「플러스 알파」의 미덕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 역시 품질을 따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오늘의 과제인 기술혁신 문제도 그렇고, 세계의 경제현실이 예외가 아니다. 남보다 더 부지런히, 남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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