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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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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요즘 들어 정도상의 소설 『낙타』의 한 장면이 자주 떠오른다. 2010년 나온 이 책은 알려진 대로 실제 큰아들을 잃은 작가의 경험이 담긴 자전적 소설이다. 자식을 앞세운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었다. 작가의 분신인 소설 속 아버지는 몽골로 여행을 떠나 드넓은 평원에서 낙타를 탄다. 생전의 아들과 함께 꿈꿨으나 같이하지 못했던 여행. 여행의 마지막 날 아버지는 하늘로 돌아가는 아들을 가슴 깊이 묻는다.

 일종의 씻김굿 같은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중학생인 아들 규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장면이다. 규는 “단테의 신곡을 따라 여행하고 싶다. 다만 제13곡 겨울나무 숲은 피하고 싶다. 생을 리셋하련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지하철 성수역 승강장에서 몸을 날린다. 이 대목을 읽을 때 그냥 책장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도대체 15세 소년의 삶이 얼마나 벅찼길래 삶을 리셋하고 싶었을까. 책은 그 이유를 명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어리고 예민한 소년이 살아내기에 너무 가혹했던 삶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이때 ‘리셋’이라는 소년의 외마디 절규는 사실 ‘잘 살고 싶었어요’란 말의 다른 표현은 아니었을까.

 요 며칠 새 이 장면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건 아무래도 연말인 탓이다. 이 소설 같은 극단적인 경우야 드물지만 누구든 살아가며 크고 작은 리셋을 꿈꾼다. 매 순간 내일은 오늘과 다르길 바라고, 엉망진창 꼬여버린 삶을 어떻게든 ‘리부트’하고 싶다는 갈망에 사로잡힌다.

 소설 속 규처럼 10대 영혼들까지 리셋을 꿈꾸는 현실, 한 드라마의 신드롬급 인기가 증명하듯 우리는 모두 벼랑 끝으로 내몰린 ‘미생’임을 공감하는 현실, 양극단화와 갈등과 적개심은 있지만 마땅한 해법은 안 보이는 현실, 모두 폭주 기관차에서 내리고 싶어 하지만 선뜻 내리는 이 없는 현실, “안녕하시냐”고 묻는 젊은이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다가 이제는 “어쨌든 버텨라, 살아남아라, 그것만이 최선”이란 답밖에 못 주는 현실. 리셋이 필요한 것은 그저 개개인의 삶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이기도 하다.

 시간이 하루, 한 달, 일 년 단위로 구획된 덕분에 어김없이 리셋의 새로운 전기가 다가온다. 무엇을 어떻게 리셋할까. 사실 답을 모르는 이는 없다. 알고 있지만 하지 않고 있을 뿐. 2014년은 일주일도 채 안 남았고 새해가 오고 있다. 부디 새해는 오늘과 달라지기를. 리셋!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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