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가 살아남는 길은 오로지 기술개발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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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칠기삼(運七技三).' 자화전자㈜ 김상면(59.사진) 사장이 말하는 성공 비결이다. 그러나 그는 '준비한 사람에게는…'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세계 PCM(TV 전자빔용 플라스틱 자석) 시장 1위(점유율 56%)의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김 사장은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회사의 주력 제품이 한국 수출의 양대 기둥인 전자와 자동차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이다. 삼성과 LG가 세계 TV시장을 휩쓸고 있으니 자화전자의 매출도 덩달아 늘어난다. 김 사장이 PCM이란 제품을 들고 회사를 창업한 해는 1979년. 당시만 해도 한국의 TV가 세계 시장에서 지금처럼 성공할지 몰랐으니 운이 좋았던 게다. 자화전자의 또 다른 제품인 PTC 서미스터(반도체 소자의 일종)는 세계 시장의 30%를, 휴대전화용 진동모터는 15%를 점유하고 있다.

운(運)을 뒷받침한 '기(技)'는 뭐냐고 물었다. 김 사장은 "매출의 5%가 넘는 70억원을 매년 연구개발(R&D) 비용으로 쏟아붓고 있다"며 "자화전자의 경영방침 중 첫째가 '기술개발로 도약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이경열 조사연구실장은 "한국 부품산업의 경우 대부분의 기초 소재를 외국에 의존하고 있어 수익성이 떨어진다"며 "자화전자는 핵심소재인 자석분말을 자체적으로 개발.생산하는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자화전자는 최근 들어 주식시장에서 성적이 좋지 못하다. 지난해 10월께 한때 1만2500원을 넘어서던 주가가 최근 7000원대까지 떨어졌다. 세계 TV시장에서 LCD와 PDP TV가 떠오르면서 브라운관 TV 부품인 PCM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김 사장은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PDP 모니터의 열을 식혀주는 방열 시트, 하이브리드 차량의 필수 부품인 초강력 모터 등을 개발했습니다. 차세대 제품 8개가 출시되고 있습니다."

자화전자는 올해 초부터 삼성SDI에 방열 시트를 납품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삼성SDI에 공급하던 미국 부품회사가 납품하던 값의 절반 수준에 공급하고 있다.

김 사장은 "기초 소재 개발에는 최소한 5년 이상의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며 "임기가 1~2년에 불과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실적평가 때문에라도 이런 제품을 개발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젊은 벤처기업인에게 해줄 충고 한마디를 부탁했다. 그는 "지금은 벤처다 뭐다 해서 각종 지원책이 넘쳐나지만 25년 전 창업 당시에는 그야말로 빈손에 목숨을 걸고 시작했다"며 "프로근성을 가지고 기술개발에 힘쓰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전통 엔지니어 출신 CEO다. 청주공고와 한양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했다. 첫 직장은 정부기관인 공업시험소였지만 서른세 살에 창업하기까지 자석 생산업체 다섯 곳을 거쳤다. 창업 첫 제품이 플라스틱 자석인 것도 김 사장의 경력 덕분이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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