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속, 몸을 꼰 우주가 …로댕갤러리 '김홍주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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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수한 남방 셔츠 차림으로 2005년 작 ‘무제’ 작품 앞에 선 화가 김홍주씨. 끌로 파듯, 개미가 기어가듯, 세필 붓 한 자루 들고 캔버스와 마주하는 그의 평생 화두는 ‘회화란 무엇인가’다.

▶ 화면 위쪽은 이미지의 겉을 비우고, 아래쪽은 이미지의 안을 비워서 숨은 그림 찾기처럼 긍정과 부정의 대비를 이룬 1993년 작 ‘무제’. 사람 얼굴처럼 보이기도 한다.

화가 김홍주(60.목원대 미술교육과 교수)씨가 드러내는 첫 인상은 시골 이장 같은 털털함이다. 수수한 옷차림에 사람 좋게 웃는 그의 얼굴이 막걸리처럼 구수하다. 그림으로 들어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대꼬챙이 저리 가랄 정도로 꼿꼿한 심지가 작품을 꿰고 있다. 40년을 하루같이 '회화란 무엇인가'에 매달린 화가의 고집이 그를 꼬장꼬장한 선비로 보게 한다.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에서 16일 막을 올리는 전시회 제목 '김홍주-이미지의 안과 밖'은 두 겹의 뜻을 담고 있다. 화가 김홍주의 안과 밖, 그가 그리는 이미지의 안과 밖. 결국 사람과 작품은 하나였다.

분홍 꽃잎 하나가 있다. 평범하다. 다가간다. 자잘한 긁힘과 새털 같은 자국의 소용돌이가 소름이 돋을 지경으로 아찔하다. 생명의 굼틀거림이요, 관능의 아우성이다. 시간이 축적된 파편 더미요, 현실과 초현실이 맞물린 마술 공간이다. 우리가 본 꽃잎은 꽃잎이면서 꽃잎이 아니다. 김홍주씨는 끊임없이 되묻는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꽃잎인가, 그저 색이 칠해진 평면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가."

전시장에 선 관람객에게 이 질문은 쉽고도 어렵다. 멀리서 휘날리던 붓글씨는 다가서면 부숭부숭한 털투성이 괴기한 식물줄기다. 작고 여린 색필 무더기는 멀찌감치 떨어지니 현대판 '몽유도원도'다. 털이 서너 개뿐인 세필(細筆)로 하루 종일, 한 작품에 몇 년씩 매달려 만드는 '김홍주 식' 회화의 징그러움은 보는 이를 다시 한번 '회화란 무엇인가'란 질문으로 돌아오게 한다. 무수한 배반과 놀람 끝에 다시 작가에게 궁금증 서린 얼굴을 들이밀면 그는 모르는 척 싱겁게 웃으며 말한다. "머리가 안되니까 몸으로 때우는 거지요."

김홍주씨의 그림은 캔버스와 노동과 시간의 흐름이 만나 우연히 만들어내는 부분의 전체이자 전체의 부분이다. 꽃잎은 우주가 되고 우주는 꽃잎에 들어앉는다.

24일 오후 2시 작가와의 대화, 10월 8일 오후 2시 전시기획자인 박서운숙 전임연구원과의 대화가 열린다. 10월 30일까지. 02-2259-7781. www.rodingallery.org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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