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5. 불꽃을 따라서 <240>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이문구의 글쓰기는 또한 독특해서 고래 심줄 같은 뚝심과 신경을 지녔다고 동료 문인들은 농담 삼아 말하곤 했다. 청진동 한국문학 사무실은 언제나 오고 가다 들르는 문인들로 시끌벅적했는데 그 편집장 자리에 앉아서 노트에다 볼펜으로 깨알 같은 글씨로 소설을 쓰면서 인사도 주고 받고 때로는 말참견도 하는 것이었다. 누가 어쩌나 보려고 그의 등 뒤로 돌아가서 넘겨다보며 소리 내어 읽어도 본숭만숭이었다. 나는 나중에 '장길산'을 쓰면서 그의 집필 태도를 존중하고 배우게 된다. 이른바 예술을 한답시고 인상 쓰고 숨어서 괴로워하며 몇 줄 쓰다가 진저리를 치면서 원고를 북 뜯어 구겨버리고는 또 머리털을 쥐어뜯는 식으로 집필하는 것은 프로의 태도가 아니다. 삼류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작가.화가의 창작 태도란 대개 열광적인 예술가의 번쩍이는 영감에 사로잡힌 모습뿐이다. 그야말로 이제하 말마따나 배꼽 까고 자장면 한 그릇 뚝딱 하듯이 무심하게 일하고 코딱지도 후비고 멍하니 천정을 올려다보다가 하품도 하는 식이어야 하지 않는가.

이야기가 나온 김에 박태순을 말하자면 진정성의 사내였다. 보통 때에 보면 그는 언제나 예의 바르고 겸손하다. 그러나 술 한 잔이 들어가자마자 사람 자체가 달라진다. 말꼬리를 잡고 시니컬해지면서 갑자기 저 혼자 과격해져서 술판을 엎거나 폭력이 나오기도 하는데, 우리들 중에 그걸 제일 잘 참아주고 끝까지 감당을 해주는 사람이 이문구였다. 그래서 가령 염무웅 같은 이는 절대로 박태순과 어울려 음주하려 들지 않았다. 후배들 중에도 박태순이 느닷없이 후려갈기는 따귀를 얻어맞든가, 엎어지는 술상 머리에서 찌개를 뒤집어쓴 이들이 많았다. 그래도 술이 깬 다음날에 보면 그는 언제 그랬더냐 싶게 목소리도 조용조용하고 누구에게나 깍듯하게 존댓말로 응수한다. 당시에 박의 노래 십팔번은 '짱구타령'이었다.

- 짱구 아버지 짱구, 짱구 아들 짱구, 짱구 형도 짱구, 짱구 동생 짱구, 짱구 애인 짱구, 짱구 친구 짱구…….

하면서 한없이 짱구가 새끼를 치는 노래다. 지식인 짱구는 그의 자의식이었을까. 나는 그의 등단 초기 젊은이들의 세태를 그린 소설을 오히려 재미있게 생각했는데, 칠팔십년대에 띄엄띄엄 글을 쓰면서 그는 매우 관념적이고 원칙적으로 바뀌었다. 그 무렵 슬슬 모여들기 시작한 동료 중에 제일 막내 또래가 이시영.송기원 등이었는데 이시영이 어제 송기원이가 태순이 형한테 한바탕 두들겨 맞았다고 소식을 전했다. 전말은 이러하다. 박태순이 단편소설을 그 무렵에 발표를 했는데 두 남녀가 눈길을 하염없이 걷다가 여관에 들어간다. 그러고는 소주를 마시면서 밤새껏 해방공간의 김구 노선이 어떻고 여운형이 어땠고 이승만이 저러했다고 토론을 벌이는 것이 줄거리의 절반이라나. 송기원이 선배를 골려 먹으려고 짓궂게도 이랬다는 것이다.

- 아니 형님, 남녀가 일단 여관에 들어가면 한번 해야 되는 거 아니우? 토론만 하다가 날이 샜으니 이건 사실성이 떨어지는 거요.

하자마자 와장창, 술잔이 날아가고 송기원이 코피가 터졌다는 얘기다.

그림=민정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