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J회의 서울유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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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3년 국제신문발행인협회(FIEJ)이사회가 열린 타오르미나는 이탈리아에서 자연경관이 뛰어난 것으로 이름난 시칠리섬에서도 손꼽는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사철 연기를 뿜는 에트나화산이 병풍처럼 배경을 압도하고 있는 가운데 타오르미나는 지중해연안에 우뚝 솟은 2백m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자리잡고 있다. 주민은 8천명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이 절벽의 도시는 고대부터 사람이 살아온 유서 깊은 곳이다. 도시위쪽에 자리잡고 있는 원형극장의 유적이 그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
처음 고대그리스인이 건축한 이 원형극장은 후에 로마인들이 벽돌로 보수해서 사용했는데 지금도 거의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다.
왜 고대부터 하필이면 이처럼 높은 절벽 위에 취락이 형성되었는가에 대해 타오르미나 사람들은 두 가지 이유를 열거했다.
하나는 에트나화산이 폭발해서 흘러나온 용암으로 해안에 살던 주민들이 많이 사망했기 때문에 그 뒤로 용암의 흐름을 피할 수 있는 이 절벽 위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중해가 서구세계의 유일한 교통로였던 시대에 시칠리는 모든 세력들이 탐내는 요충이었기 때문에 외침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절벽 위의 도시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어느쪽 이유든간에 이 도시야말로 자연과 인위적 위기 앞에서도 활로를 찾아 면면히 살아온 사람의 지혜를 보여주는 기념비와 같이 오늘도 건재해있는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FIEJ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려던 한국대표단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보았다. 80년 텔아비브에서 처음 채택된 서울총회개최안은 그 후 주로 북구 몇 나라 대표들의 집요한 반대로 보류됐다가 이번 회의에서 수정돼 만장일치로 확정된 것이다.
그것은 국제언론계의 분위기나 한국의 국내정치와 경제가 그동안 다진 안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하나의 방증이기도하다.
서울회의가 확정되자 일부대표들은 특히 금속활자를 「구텐베르크」보다 2백년 앞서 발명한 것으로 국제적으로 공인된 한국을 직접 방문해서 옛 금속활자를 보게된데 대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 언론인들에게 한국이 무엇보다도 활자문명의 종주국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흐뭇했다.
국제언론인단체의 두 주류중 하나인 FIEJ의 지도급 인사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한국에서 85년5월 모임을 갖게된 것은 여러 면에서 뜻깊은 일인 것 같다.<장두옥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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