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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분양가 자율화, 실보다 득이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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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영진
최영진 기자 중앙일보 부동산전문기자
최영진
부동산전문기자

드디어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문제가 국회에서 해결될 모양이다. 그토록 반대를 고수하던 새정치민주연합 측이 연내 관련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분양가 상한제 폐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유보, 재건축 조합원에 대한 다주택 공급 허용 등을 담은 이른바 ‘부동산 3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엄청 공을 들였다. 경제 살리기란 명분을 앞세웠지만 “관련업계의 로비를 얼마나 받았길래 저렇게 열심인가”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업계도 국회를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관련 법안 개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법 개정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을 찾아가 쓴소리까지 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야당 측은 “서울 강남 같은 부자동네만을 위한 법”이라며 정부·여당의 간청을 야멸차게 뿌리치곤 했다. 그랬던 야당이 온갖 요로를 통해 밀려오는 압력을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서인지 고집을 누그려뜨렸다. 이번 여야 합의로 야당의 반대 때문에 국회에서 잠자던 분양가 상한제 폐지법안이 2년3개월 만에 빛을 보게 됐다.

 부동산 3법 중에서 가장 관심거리는 분양가 상한제다. 들리는 말로는 공공택지지구에만 상한제를 적용하고 다른 곳은 업체 자율에 맡기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것 같다. 이렇게만 돼도 주택업계로서는 큰 이득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사실 분양가 상한제는 자유시장 체제에 안 맞는 규정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분양가 규제가 1970년대부터 존재해 왔다. 당시에는 정부가 아예 분양가를 정해놓고 그 이상 받을 수 없게 통제했으니 지금의 상한제는 양반인 셈이다. 분당·일산과 같은 수도권 5개 신도시가 만들어지던 시절에는 원가연동제가 시행되면서 자율화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95년 11월 주택시장이 안정세를 유지했던 강원·충북·전북·제주도의 85㎡ 초과분 아파트부터 분양가 족쇄가 풀렸고 99년 1월 일부 공공주택을 제외한 전 주택으로 분양가 자율화가 확대됐다.

 하지만 2000년대 저금리 기조와 맞물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2005년 3월 다시 분양가 통제규정이 만들어졌다. 분양가 자율화가 집값 폭등의 주범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사연이 많은 분양가 상한제를 지금 와서 없애려는 이유는 뭘까. 무주택자 입장에서는 생활에 큰 불편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폐지하려 드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분양가 상한제가 주택업체들의 분양가 올리기 경쟁에 제동을 걸어 집값 안정에 기여한 공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

 그런데도 분양가 상한제를 없애려고 애쓰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장기간의 주택시장 침체로 크게 악화된 주택업체들의 경영 개선이 시급해서다. 미분양 우려가 있는 비인기지역의 경우 분양가 상한제 폐지 효과는 별로 없지만 서울 강남과 같은 곳은 분양가를 좀 더 올려도 얼마든지 살 사람이 있어 그만큼 사업성이 높아진다. 앞으로 사업이 될 만한 곳은 강남권과 목동 재건축 단지를 비롯한 몇몇 지역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주택업체 입장에서는 분양가 자율화가 절실하다.

 다음은 상한제 심사가 너무 경직돼 실제 투입된 비용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아파트 분양 전에 인허가 관청에서 분양가 심의를 통해 업체들이 분양가를 부풀린 게 없는지 조사를 벌인다. 이 과정에서 심의위원들은 업체들이 교묘하게 뻥튀기한 금액을 제대로 잡아내기 쉽지 않다. 게다가 몇 시간 안에 방대한 자료를 다 조사할 수 없을뿐더러 풍부한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위원들도 별로 없어 숨겨져 있는 부실 금액을 찾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위원들은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일률적으로 분양가를 삭감하는 사례가 많아 업체들의 원성이 잦았다. 좋은 자재를 쓰고 싶어도 자재값이 분양가에 반영되지 않아 주택품질을 향상시킬 수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업체들의 생각과 달리 정부의 기대치는 좀 다르다. 바로 기존 주택시장 활성화다. 신규 아파트 분양가가 주변의 주택값보다 높아지면 기존의 중고 주택가격도 덩달아 뛰는 효과를 노리려는 것이다. 중고 주택값이 오르면 거래가 활발해져 꽉 막혀 있는 주택시장의 활로가 생기고 이로 인해 경제 전반에도 화색이 돌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기존 집이 안 팔려 옴짝달싹도 못하는 신종 하우스푸어도 구제될 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이런 효과가 나타난다면 분양가 자율화를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다. 물론 분양가 상한제 폐지에 따른 부작용도 없지 않다. 지금의 부자동네 사람들의 부(富)는 더 커져 그렇지 못한 지역과의 빈부차가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다가 주택업체들의 분양가 올리기 경쟁으로 인해 투기바람이 불게 될 경우 또다시 주택값 급등을 불러올지 모른다.

 하지만 ‘경제는 유통’이라 하지 않았던가. 가계 경제의 가장 큰 항목이 주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떻게 하든 주택 거래시장을 정상적으로 돌려놓지 않으면 침체된 내수경제를 살려낼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일단 경제를 살려놓고 볼 일이라는 얘기다.

최영진 부동산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