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대있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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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류지주」의 의연함
중국 산서성의 산 사이를 누벼 내려오는 황하의 물줄기가 동관에 이르러 동쪽으로 꺾여 화북평원에서 격류가 되어 빠져 나오는 곳에 큰 바위가 우뚝 솟아있다고 한다.
모든 것을 삼켜버리듯 도도히 흐르는 물결 속에서 그 바위는 끄떡도 없이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옛 중국 사람들은 그 의연한 모습들을 두고「중류의 지주」라 불었다고 한다.
흐르는 강물만을 따라가며 보고있으면 바위는 마냥 뒤로 물러 나간다. 그것은 마치 새 시심의 물결을 따르지 못하는 낙오자 같기만 하다. 어떻게 보면 또 바위는 흐르는 물결을 막겠다고 버티는 반동 같기만 하다.
그러나 눈을 바위에 두고보면 모든 것이 물결에 휩쓸려 표류하는 가운데서 바위만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물결을 타기는 쉽다. 거센 물결에 거역하지 않고 물결을 따라 남들과 함께 흘러 나가기란 여간 편한 일이 아니다.
바위는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위가 아무리 버틴다해도 거젠 물결을 막을 길은 없다. 모든 것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면서까지 제자리를 지키겠다는 그 고집스러움이 때로는 비웃음을 받을 만도 하다.
그러나 이 바위가 있기에 물살이 얼마나 빠른지,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를 알아볼 수도 있게된다.
한 사회가, 또는 한 민족이 눈부시게 움직이고 있을 때에는 이런 바위와 같은 것이 있어야한다. 영문모르고 그저 물결에 휩쓸리거나, 잔뜩 들뜬 마음으로 물결을 타겠다고 서두르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런 우직한 바위와 같은 무엇인가가 있어야한다. 그래야 표류도 타지 않게 된다.
역사를 윤기 있게 만드는 것도 이런 바위들이다.
해방직후의 어느 날 당시 중2년이던 나는 우연히 전차 속에서 허름한 차림의 옛 국교 때의 담임선생을 보았다. 어쩌면 내가 잘못 봤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혹시 그 사람이 나를 각별히 아껴 주던 안등이라는 일본인 서행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차 안의 일인담임>
그는 황급히 얼굴을 돌리는 듯했다.
곧 이어 그 자리를 떴다. 옛 제자까지도 경계해야했을 것이다. 그 만큼 일본인이라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모를 만큼 어수선하던 서울거리였다. 어쩌면 또 옛 제자에게 누추한 꼴을 보이기가 부끄러워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후에 들었다.
잠시 머무적거리던 나는 그 사람이 안등 선생임을 확인할 수 없게된 것을 은근히 다행스레 여기면서 그 자리를 피했다.
만약에 그가 정말로 안등 선생이고 서로 반갑다는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면 나는 곧 그 분을 집으로 모셔와서 한끼라도 따뜻이 대접해야 옳았다. 부모에게 부탁하여 얼마 안 되는 용돈이라도 드려야 옳았다.
그게 도리요, 인정이다. 아무리 일제가 나빴다 해도 한국에 있던 모든 일본인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착한 일본인도 적지 않았다. 물론 안등 선생도 그 중의 한 분이었다.
나는 그 분이 아는 체 하지 않은 것만을 다행으로 여겼다. 「쪽발이」를 안다는 것부터가 엄청난 죄악인양 여기게 만들던 당시의「물결」에 나도 흠뻑 빠져 있던 것이다.
그런지 40년 가까이 지난 오늘에도 그때 일이 생각날 매마다 뉘우침과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저 이제는 70노인이 다 됐을 그분이 일본의 어디에선가 건재하시기를 바랄 뿐이다.
당시만 해도 너나 없이 해방의 광조에 휩쓸려 「중류의 지주」를 잃고 있었다. 그 후에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는 그런 지주가 될만한 인물도 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영국의 일 천황 대접>
지난주에 중증근 일본수상은 웃음을 담뿍 뿌리고 돌아갔다. 서로가 정말로 큰 일을 치렀다. 일본의 현직 수상이 취임하자마자 우리 나라를 찾게 만들기까지에는 외교상의 어려움이 여간 크지 않았으리라. 중증근 수상으로서도 어지간한 용단이 아니었다.
그는 한국에 머무르는 이틀동안에 우리가 듣기 좋아한 말, 우리가 꼭 듣고싶어하던 말들을 조금도 외교적인 수식 없이 들려주었다. 이게 계기가 되어 두 나라가 정말로 다정한 이웃이 되어 서로 돕고 돕는 사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기도 하다.
그래도 아직은 길은 멀다. 정책적인 결정과 국민의 감정에는 항상 괴리가 있게 마련이다. 중자근 수상의 용단을 일본인 전체의 집약된 의사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토록 쉽게 올 수 있는 곳을 왜 그이전의 다른 수상들은 오지 못했는가 하는 의문도 새로 생긴다. 그리고 교과서를 개정하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아직 일본의 고교생들은 일제36년이 침략이 아니라고 배우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잔뜩 군국주의의 복고조가 판치고 있다. 그런 물결이 중증근 수상 한 개인의 역량으로 바꿔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기업가는 중증근 수상의 방한은 약진 한국의 국력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과연 오늘의 한국이 무시해도 좋을 만큼 무력한 나라라면 사정은 크게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문제는 다시 우리 쪽으로 돌아가게 된다. 일본의 천황이· 몇 해전인가 전후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했을 때 그가 기념 식수한 묘목은 하룻밤을 견디지 못하고 누군가의 손으로 뽑혀나갔다.
「엘리자베드」여왕 주최의 정찬회에는 「마운트바텐」경을 비롯한 여러 귀빈들이 참석을 거부했다.

<옛 호랑이 할아버지>
우리 나라에서도 한 명쯤이라도. 중증근 수상을 위한 점심이나 디너에의 참석을 사양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그랬으면 불과 두어 달 전까지 그토록 열띠게 벌여오던 이른바 극일 운동의 참뜻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그랬어야 또 온갖 원한에도 불구하고 참석한 사람들의 선의가 한결 돋보였을 것도 같다.
예전에는 웬만한 집안이면 으례 고집스러운 호랑이 할아버지가 있었다.
아무리 짖궂어도 그런 할아버지가 있기에 「뼈대있는 집안」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런 할아버지들이 사라진지 오래된다. 이와 함께 「뼈대있는 집안」 도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가정과 나라를 같은 시각에서 볼 수는 없다.
그렇다하더라도 더러는 「뼈대있는 사람」들이 고집을 부리는 것이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런 사람들이 나라를 걱정하는 충정이 바르게 평가돼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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