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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때 시조최다작가는 이세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지금까지 희미하게만 알려졌던 시조작가의 전모가 완전히 드러났다.
단국대 진동혁교수(국문학)는 최근 조선시조사의 대표작가 이세보의 연구를 마무리, 이를 묶어 『이세보 시조연구』로 펴냈다.
진교수가 서울 청계천 8가의 고서수집상 으로부더 각자의 이름이 없는 『풍아』란 시조집을 입수하게 된 것은 지난80년5월. 동분서주 끝에 2개월만에 이것이 이세보의 작품임을 밝혀냈다.
경호군 이세보는 조선의 왕족으로 1832년(순조32년)∼1895년(고종32년)을 산 인물. 세도정치가 극심할 때 김재근·김문근을 비난했다가 작호를 뺏기고 완도군 신지도로 유배됐다가 고종의 즉위와 함께 풀려나 종정경에 올랐음. 이것이 세상에 알려진 그의 신상의 전부일 뿐 시조와는 무관한 상태였다.
이세보의 시조집『풍아』가 발굴되기 전 『가곡원류』(일석본『청구영언』)에는 「이판서인응」의 이름으로 6수의 시조가 실려 있었으나 그가 누구인지 몰라 「신원미상」으로 처리 됐었는데 이번에 그것이 이세보의 또다른 이름인「인응」의 오기임도 밝혀냈다.
이제 진교수가 수집한 이세보의 시조는 모두 4백58수.
진교수는『「풍아」가 발견되기 전에는 조선시조사에서 최다작작가는 「가곡원류」를 엮은 안민영으로 알아왔으나 이제 이세보가 최다작 작가로 등장했다』고 지적했다. 안민영은 1백80수의 시조를 남기고있다.
또 조선조 말엽 시조의 주축은 평민으로 옮겨지고 사대부 시조는 영상시대의 이정보를 마지막으로 종말을 고한것으로 알려졌으나 이세보시조의 등장으로 지금까지의 학설에 수정을 가하게 됐다고 진교수는 주장했다.
이세보의 시조는 주제의 다양성에서도 다른 작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부정부패의 비판·유배·애정·도덕·기행등 다양하고 독특한 주제를 구사함으로써 흔히 사대부들의 작품에서 보는 음풍농월적인 시조와는 완연히 구별된다는 것.
이세보의 시조 중 특히 눈길을 끄는것은 현실 비판 시조.
탐학수령 들어보소
입시날 칠사강을 뜻알고 하였던가
성밖을 떠나서면 어이 그리 실진한고
저런 병에 먹는 약은 신농씨도 모르려니
수령이 취임직전에 왕에게 인시하여 선치를 맹세하며 외는 칠사강도 성밖만 나서면 모두 잊고 탐학만 일삼는 현실을 개탄한 시조다.
진교수는『현재 전하는 조선시조중 관료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비만한 시조는 없었다』고 말하고 그런점에서 이세보가 남긴 예리한 현실비판 시조는 귀중한 문학유산일뿐 아니라 그시대 연구에도 .큰 도움을 줄것이라고 지적했다.
진교수는 이세보가 조선시조의 마지막을 가장 성대하고 특성있게 장식한 작가임을 강조하고, 그의 시조가 『가곡원류』에 실린 사실은 그 찬자 안민영은 물론 자신의 재종형이며 안민영을 매우 아낀 대원군과 자주 어울려 많은 시조를 짓고 읊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안에 진교수는 이세보 시조의 주석본을, 단국대 동양학연구소는 그의 시조집의 영인본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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