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의 포도청 공정거래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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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제계의 포도청-. 공정거래실에 붙여진 별명이다. 출범한지 l년 반 남짓 동안 51개 기업과 14개 조합의 잘못을 가려내서 혼을 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름 있는 대기업들이 태반이고 소비자들과 직접 관련이 깊은 회사들이 대부분이다. 소비자를 골탕먹인 기업들을 밝혀내고 기업들끼리의 싸움에 재판관 역할도 해낸다. 잘못을 꼬집어 시정명령을 내리고 그래도 안 들을 때는 고발조치로 체형까지 먹인다.
81년4월 공정거래실의 간판을 내건 이후 취급한 굵직한 사건들만 해도 ▲OB베어 체인의 안주파동 ▲삼성전자-금성사의 냉장고 광고전쟁 ▲유명백화점들의 바겐세일 ▲남양-매일분유의 허위과장광고 ▲진로의 양주 끼워 팔기 ▲0B시그램과 베리나인 골드 위스키의· 주령 표시 ▲부당하게 타 회사 주식을 취득한 송원산업 ▲가격카르텔의 횡포를 부렸던 한국석유가스 유통협회부산지부 등-.
이들 중에 실제로 고발조치까지 당한 경우는 한국석유가스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시정권고나 명령에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기업들이 정작 두려워하는 것은 고발을 당해서 벌금을 얼마 내느냐보다 소비자들 앞에 공개사과를 해야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시정명령이 잘못한 내용을 꼭 신문지상을 통해 낱낱이 사과토록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과광고의 크기뿐 아니라 문안까지 공정거래실에서 정해주는 대로 해야한다.
일단 걸려들기만 하면 기업의 체면은 말이 아닌 까닭에 『벌금은 얼마든지 낼 테니 제발 사과 광고만은 봐달라』 고 사정해오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거래실 측은 지금까지는 매우 온유한 태도를 춰해 왔다는 주장이다.
시작이니 만큼 정부 쪽도 준비가 미흡했고 기업이나 소비자 쪽도 인식이 충분치 않아 「많이 봐줬다 (?) 」 는 것이다. 금년부터는 「뭔가 보여주겠다」라고 단단히 벼르고있다. 작년에 마련한 표시·광고의 공정화 방안과 하청업체에 대한 불공정거래 행위 지정고시가 첫 번째 쳐놓은 본격적인 그물이다.
전자는 기업과 소비자간의 문제고 후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고질적인 분쟁으로 말썽을 빚어온 것들이다.
첫 번 째 타이트가 허위·과장광고. 여기에 걸려든 대표적인 케이스가 최근의 붐을 일으킨 콘더미니엄 회사와 의류메이커들의 과장광고들이다.
모 콘더미니엄 회사는 선전 팸플릿에 부산해운대에 지을 콘더미니엄을 선전하면서 표지에 실은 사진은 해운대가 아니라 와이키키해변의 초대형호텔건물 전경을 실었고, 또 다른 유명 콘더 회사는 건축허가도 받지 않은 채 분양광고를 내는가하면 양도소득세가 면제된다는 등의 허위광고를 게재했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모 의류메이커는 기술제휴를 해 국내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마치 수입한 것처럼 광고하다 지적을 받았고 고쳐만든 광고 역시 「국내생산제품」이라는 표시가 보일 듯 말듯 너무 작다는 지적에 따라 또 다시 고쳐야할 판이다.
문제는 홍보기간이 끝나고 공정거래실이 진짜 칼을 빼들겠다고 선언한 4월부터다. 사건의 유형별로 무조건 대표적인 케이스를 하나씩 끌라 시범 처벌하겠다고 벼르고있는 바람에 기업의 광고담당자들은 벌써부터 대처방안을 찾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다는 이야기다.
더 골치 아픈 고민거리는 하청업체에 대한 불공정거래행위지정고시다.
으례 90일 짜리 어음을 끊어주던 것을 앞으로는 60일로 당겨줘야 하고 대기업이라고 해서 일방적인 편의를 보려다 포도청에 불려들어 갈 경우 몇 배의 망신을 치러야할 판이다.
그렇다고 공정거래실이 기업들에 꼭 무서운 존재만은 아니다. 수출업체를 비롯해 국내기업들이 외국기업과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해야할 때는 공정거래실이 방패막이 구실을 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득을 보게 한 케이스도 개점이후 2백27건에 달한다.
그러나 태동부터가 어려웠듯이 공정거래실이 제 기능을 수행하기까지는 아직도 첩첩산중이다. 66년부터 공정거래제도를 도입하자는 4차례의 시도가 수포로 돌아갔고 결국 80년에 와서야 빛을 보개된 것이다. 경제여건의 미성숙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반대 로비도 크게 작용했었다는 후문이다.
사실 저금까지 공정거래실이 큰 소리를 쳐 왔던 것도 따지고 보면 지엽적인 사안들에 불과했다. 공정거래제도의 기본정신이 시장 기능을 제대로 살려나가자는 것이나 현실은 영 딴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동안 경제정책 자체가 과속 성장에 밀려 독과점을 조장했고 시장기능을 묶어온 것이 사실이다.
공정거래실이 제 궤도에 들어서려면 결국 정부부터 솔선해서 공정거래정신을 지켜야 한다. 정부의 산업정책은 떼었다, 붙었다 마음대로 하면서 기업들만 몰아붙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 동안 몇 번씩 엎치락 뒤치락을 거듭해온 자동차·중전기 등 중화학 공업 분야의 산업구조 조성이야말로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쟁제한 행위요, 불공정거래 행위일 것이다.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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