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제도의 근본적인 재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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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제 대학별 면접시험을 고비로 금년도 전기대학의 입시전쟁도 끝나가고 있다. 12일 마감된 원서접수창구는 그야말로 전장이었다는 신문표제가 실감난다. 투기장에 나온 어른 세계를 방불케 했다고 쓴 신문도 있다.
어느 대학에 얼마나 많은 수험생들이 몰리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전 가족이 동원되는 일은 얼마든지 있었고 어느 학과를 지망할지를 점치는 사람들로 복술가의 집이 성시를 이루는 난센스도 빚어졌다. 벌써 몇 년째 되풀이되는 이 같은 입시풍경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이것도 교육인가』라는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거의 해마다 바뀌고 보완된 것이 우리의 교육제도였다. 다 알다시피 현행제도의 골격은「7·30교육개혁」의 후속조치로 짜여진 젓이다. 무제한 복수지원을 2개 대학까지의 지원으로 바꾸고 이번에 다시 학과별 모집에 1개 대학, 3개학과 지망으로 제도를 변경했으나 요행을 바라는 눈치싸움은 여전했다.
특히 금년의 경우는 고득점자의 양산으로 누구도 자신 있는 진로지도를 할 수가 없었다. 응시자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정보조차 일체 막힌 제도 밑에서 자신 있는 진로지도를 했다면, 그것이 도리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대학임시제도를 지금처럼 바꾼 당국의 의도를 충분히 알고 있다. 과열과외를 없애고 고교교육을 정상화시킨다는 7·30교육개혁의 뜻은 그런 대로 설득력이 있었다.
고교교육을 정상화함으로써 내신반영 비율을 높이고, 언젠가는 고교내신정적만으로 대학에 진학토록 한다는 목표는, 그러나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금세 드러났다.
내신성적만으로 대학에 들어가도록 하는 절대적 전제는 고교평준화 시책인데 이것이 실패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 아닌가. 평준화가 실패한 마당에 현행 입시제도를 고수하고 내신반영 비율도 높이겠다는 것은 당국의 무모한 독선이며, 아집이다.
그리고 당국이 대학입시를 학력고사 하나로 일원화한 것은 예시와 본고시의 두 차례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명분에서였다.
예비고사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본고사에서도 우수한 것이 드러난 이상 이중의 고통을 줄 이유가 없어 일원화했다고 당국은 설명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현행제도 역시 고통을 치르는 점에서는 종전의 제도와 아무런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어느 학교에 얼마나 많은 수험생이 몰리며 점수분포는 어떤가를 알아서 원서를 제출하는 일은 학교별 입시를 치르는 일보다 고통은 마찬가지며 더욱이 떳떳하지도 못한 일인 것이다. 일부 인기학과 편중현상도 그렇지만, 적성은 어떻든 우선 붙고 보자는 풍조도 제도 탓으로 돌리지 않을 수 없다. 1개 대학 3개학과롤 지망할 수 있게 한 제도 밑에서 제1지망은 원하는 학과를 고르되 2, 3지망은 적성과는 동떨어진 학과를 지망하기 십상이다. 가령 경영학과 지망생이 안전합격을 노려 국문과나 철학과를 제2지망하는 일은 난센스도 이만 저만이 아닌 것이다.
적성과 소질에 따라 진로를 선택하라고 아무리 외쳐봤자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당사자들에게는「공염불」로 밖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입시철마다 되풀이되어온 혼란과 모순을 보완하는 방안은 물론 강구되어 왔다. 하지만 이 같은 제도의 보완으로 문제를 풀어가기는커녕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 결과가 되고 말았다.
이런 문제들을 놓고 볼 때 현행 대학입시제도의 개선은 불가피하다.
물론 개선의 정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혹은 근본적으로 대학입시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이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현행 대학입시의 골격은 선 시험, 후 지원이란 절차와 학력고사 성적과 내신성적을 결합한 전형형식이다.
지난 3년간의 경험으로 볼 때 선 시험, 후 지원의 제도에서 고교의 진학지도와 학생, 학부모의 눈치작전, 도박입시전술에도 불구하고 혼란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그 점에서 볼 때 선 시험, 후 지원에 문제가 있든지, 아니면 학력고사, 내신종합사정에 문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가지가 결합된 문제일수도 있다.
그러나 우선 현행제도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그러면서도 모든 수험생들이 자신의 실력과 적성에 맞게 대학과 학과를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지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수험생들이 자신의 성적을 알고는 있지만 자신의 성적에 맞고 적성에도 맞는 대학과 학과를 선택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또 대학과 학과의 불변적 차등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차등이 있어서도 안될 것이다.
그런 조건 때문에 이미 따놓은 점수를 가지고 손해보지 않으려는 싸움은 부가피하다.
단지 현행제도에서 수험생의 적성 면에 조금 유의하고 학생을 받아들이는 입장에 있는 대학이 학생을 골라 뽑는 능동성을 강화하는 보완책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대학이 자율전형 권을 일부 살려 갖는 일이다. 학력고사는 공신력은 있지만 객관시험 일변도로 실력을 단지 피상적으로 판정할 수밖에 없는 제약이 있다. 또 내신은 고교생활의 일반적 성향을 나타낸다고는 하지만 각 학교의 학력 차가 명백한 현실에서 학교 차를 무시하고 일률로 15등급화하고 있다는 불 합리가 있다.
때문에 대학이 각기 자기들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할 재량권을 회복하는 일은 대학교육의 권위와 정상화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학력고사성적과 고교내신을 중심으로 한 현 제도에 대학의 전형성적을 첨가할 필요가 그래서 생긴다.
또 선 지원, 후 입시로 순서를 바꾸는 것도 다소 혼란을 막는 길일 것도 같다.
그러나 그런 보완적 개선책보다는 입시제도의 근본적 개혁이 더 시급한 것 같다.
문교당국이 나라의 교육문제에 전혀 간여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공연히 불필요한 제도설정이나 행정간섭의 타성에 젖어 사사건건 문제를 만들지는 말아야겠다.
정부가 제도나 원칙을 정하고 그 수행만 감시할 일이지 모든 학정문제에 끼어 들어 혼란만 조장해서는 안되겠다는 뜻이다.
대학입시제도 문제만 해도 근본적으로 정부는 대학입학자격고사를 통해 수험생이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의 여부만을 판정하는 것에 그치면 충분한 것이다. 입시의 절차나 전형은 각 대학의 자율에 맡기고 그 공정과 합법성만을 감시하면 되는 것이다.
어느 의미에서 지난 수년동안 이루어졌던 문교당국의 헤아릴 수조차 없는 제도의 개폐·보완작업들은 공연한 소문취례로 크게는 국가적 인력·재력의 낭비일 뿐 아니라 국민의 교육에 대한 신뢰감을 해친 결과만을 가져온 것 같다.
당국으로선 이 기회에 고집스럽고 경직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대학입시개혁을 위해 진지하게 나서주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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