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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화성으로 간 사나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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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으로 간 사나이'는 2%가 부족한 멜로영화다. 흰눈이 쌓인 언덕, 졸졸 흐르는 냇물, 별이 총총한 밤하늘, 군고구마가 익는 화롯가 등 서정적 화면은 볼 만하나 관객의 마음은 온전히 빨아들이지는 못한다.

군데군데 대사가 재치있고, 유머도 상큼하지만 전체의 이음새는 성긴 편이다. 그 결과 동화 같은 순수한 사랑, 또 그에 따른 비극적 결말에 선뜻 공감하기 어렵다. 주인공의 감정을 따라가기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원인은 하나다. 등장 인물과 배경 설정의 상투성 때문이다. 겉으론 환상과 실제를 섞은 색다른 멜로영화를 지향했으나, 그 어느 한쪽도 충분히 천착하지 못하고 양자의 어정쩡한 결합에 그친 듯하다.

'화성으로 간 사나이'의 스태프.연기자는 모두 정상급이다. 영화 '간첩 리철진''킬러들의 수다'를 감독하고 연극 '박수칠 때 떠나라''웰컴 투 동막골'을 연출한 재주꾼 장진이 시나리오를 썼다.

역시 그가 대본을 썼던 '동감'(2000년)의 김정권 감독과 손을 잡고 또 다시 멜로영화에 도전했다. 연기자로서 새로 나겠다는 스타 배우 김희선의 각오가 화제가 됐고, '공동경비구역 JSA''지구를 지켜라'의 신하균이 합류했다.

그런데 영화는 이름값을 못한다. 작가와 감독이 3년 전 '동감'에서 시도했으나 '절반의 성공'에 그쳤던 신비한 사랑이 거의 전진하지 못한 모양새다.

20년 전의 여자와 현재의 남자를 무선통신기로 연결했던 '동감'처럼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도 17년의 간극을 뛰어넘는 사랑이 주요 테마로 등장하나 기나긴 시간의 공백을 메워줄 장치가 허술한 까닭이다.

*** 신하균의 물오른 연기

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한 한적한 시골 마을의 우체부인 승재(신하균)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전학간 소희(김희선)를 가슴에 품고 산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소희를 친오빠처럼 보살피며 각별한 정을 키우던 승재는 '화성으로 갔다'는 소희의 아빠를 대신해 소희가 화성에 띄운 편지에 답장을 보내기도 한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를 연상시키는 이들의 어린 시절이 앞부분에 배치되고 이어 17년 후인 현재에 다시 만난 그들의 애틋한 관계가 펼쳐진다.

유년의 추억을 잊지 않았지만 이미 도시의 여인이 된 희선과 변함없는 외사랑을 지켜왔던 승재와 재회의 갈등, 그리고 이별이 제법 애잔하다.

*** 상투적 등장인물 등 아쉬움

하지만 그들의 교감은 별다른 울림을 주지 못한다. 시골과 도시, 유년과 성년, 순수와 경험 등의 대비가 워낙 선명해 미세한 감정이 끼어들 틈이 좁다.

승재를 짝사랑하는 시골 약국집 딸 선미(박소현)나 소희가 사랑에 빠지는 자수성가형의 증권회사 이사 성호(김민준) 등도 진부한 인물에 그쳐 영화의 잔재미를 넓히는 데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

그래도 수확이 있다면 신하균의 연기다. 때론 바보처럼 비쳐 답답하긴 하나 해맑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설렘을 특유의 순박한 미소로 표현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이별을 통보받을 때의 비통한 표정도 깊게 각인된다.

대관령 일대의 눈밭, 한적한 시골 마을 등을 포근하게 담은 영상미도 수준급이다. 언어를 다루고, 웃음을 빚어내는 데 남다른 재능이 있는 전방위 문화꾼 장진이 인물.상황 연구에 좀더 공을 들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말이다. 1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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