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자유구역 하나라도 제대로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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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자유구역을 놓고 불균형 성장이다 뭐다 해선 안 됩니다. 살기 좋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전초 시범기지로 보고 국가의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남덕우 전 국무총리) "과거사 진상 등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21세기에 맞는 미래 발전의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이승윤 전 부총리)

과거 경제정책을 주도했던 원로들이 최근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IBC(International Business Center)포럼이 지난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개최한 세미나 자리에서다.

선진국 진입을 위한 경제정책과 방법론을 논의하기 위해 2003년 5월 결성된 민간단체인 IBC포럼에는 남 전 총리와 김만제.이승윤.진념 전 경제부총리, 고병우 전 건설부 장관, 박병윤 전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IBC포럼은 지정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지지부진한 경제자유구역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중국의 경제성장을 대표하는 상하이 푸둥(浦東)지역을 직접 방문해 현지에서 세미나를 열었다.

좌장 격인 남 전 총리는 기조연설에서 "세계화는 정보통신과 교통기술의 혁명적 발달에 따른 결과로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지만 우리 주변에서는 아직도 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과제는 각종 규제를 혁파하고 교육.의료 부문을 개방하며 산업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라며 "전국적으로 이를 추진하기 힘들다면 경제자유구역만이라도 적극 육성해야한다"고 밝혔다.

남 전 총리는 최근 다른 자리에서도 "국가 경쟁력도 살리고 균형발전도 꾀하자면 일을 그르치게 된다"며 "핵심 역량은 경제자유구역에 집중한 뒤 이를 타 지역으로 확산시켜나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특히 "국민을 편 가르기보다 한마음으로 이끌어갈 정치적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시기"라고 역설했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도 "20여 년 전만 해도 중국에서 한국을 본받아야 한다고 찾아왔지만 이제는 우리가 중국의 푸둥 경제특구나 쑤저우(蘇州) 공업원구 등을 배워야 하는 입장이 돼 버렸다"고 밝힌 뒤 "이런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 한채 아직도 헨리 조지니 뉴딜이니 하는 과거의 아이디어에만 매달리고 있는 현실이 아쉽다"고 지적했다.(헨리 조지는 19세기 미국의 경제학자로 토지공개념 등을 주장했다)

이어 고병우 전 건설부 장관은 "자손들에게도 지금 누리는 우리의 부를 전수해 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며 "굶어도 다 같이 굶고, 평등하게 다 같이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해선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질타했다.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만제 전 부총리는 "우리 산업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면 재벌도 적대시하지 말고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광범위한 지역을 떼어내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할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병원 하나, 학교 하나라도 요건만 맞으면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 정책에 있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승윤 전 부총리는 "경제자유구역 외에도 기업도시.혁신도시.산업클러스터 등 부처마다 비슷한 정책을 쏟아내는 바람에 모두 제대로 추진될지 의문"이라며 "정책 목표를 집중하고, 위원회 등으로 비대해진 정부 조직을 먼저 정비해 정책의 주체를 명확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세미나 참석자들은 우선 1차 과제로 국가적 프로젝트를 담당할 경제자유구역청장(지방 1급 공무원)이 관할 자치단체장의 지휘를 받고 있는 현행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처럼 지자체 산하단체로 두면 원스톱 서비스 등을 통한 외국인 투자유치가 어렵다는 것이다. IBC포럼은 경제자유구역청을 중앙정부 직속의 특별지자체로 독립시켜 별도의 행정권한과 예산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정부에 긴급 건의했다.

상하이=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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