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간의 정붙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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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몇해전 여름. 『아줌마, 물좀 주세요.』
부엌문이 열리면서 유치원 다니는 서울 조카녀석이 하는 말이었다. 『아줌마가 아니라 큰엄마야.』 『큰엄마예요?』하면서 싱끗 웃는다. 『형네 아빠는 왜 안오셔.』
시골형이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큰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모른다.
나역시 생활에 쫓기다보니 동서네집 가는 기회도 없으니 l년에 한번정도 어른들 생신때나 동서가 오게되면 볼 수 있는 큰어머니를 어린것이 기억할리 없다.
지난 여름방학때는 우물안 개구리처럼 지내던 아이들을 저희들끼리 여행을 보냈다. 시골에서만 자랐고 성격 또한 내성적이라 저희들끼리는 멀지 않은 삼촌댁에도 가려하지 않기에 서울구경도 할겸 찾기 쉬운 고모댁에 며칠 몇시 열차로 간다는 전화만 하고 보냈다.
서울 다녀온 후 사촌들과 즐겁게 지냈던 일을 신나게 이야기하며 매사에 자신도 생긴 것같았으며, 어렵게만 느껴오던 삼촌·숙모·고모께도 애정을 느끼는 것같아 매우 흐뭇했다.
며칠전 서투른 글씨의 성탄카드가 왔다. 『아줌마, 물좀 주세요』하던 조카가 벌써 학교 다닌다고 큰엄마가 보고 싶다는 글까지 쓸줄 알게 된 것이다.
친척간의 교류란 이처럼 소중하다.
이번 겨울에도 냉장고만 열면 먹을 것이 준비돼있고 스위치만 누르면 실내 공기가 따뜻해지는 줄만 아는 조카들을 다시 초청해서 시골생활을 체험하며 추위를 견딜줄아는 끈기력도 알게 해주어야겠다.
그리고 냉장고가 아니라도 시원한 식혜랑 수정과를 마실 수 있고, 달기만한 케이크보다 쫄깃쫄깃한 인절미에 딸기잼대신 홍시를 발라 먹을 수 있고, 과일이 먹고 싶을 땐 밤중이라도 플래시를 들고 마당에 가서 무우 구덩이를 헤쳐 무우를 꺼내도록 해보리라.
맛있는 과일과 비교도 안되는 무우일망정 아이들은 맛있게 먹으리라.
따뜻한 아랫목에서 꽁꽁 언 홍시를 한 바가지놓고 녹여가며 먹이면서 홍시처럼 달콤하고 구수한 옛날이야기로 아름다운 추억이 되게 하리라. <경북 경산군 압양면 조영동255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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