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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유통업계 할인점 규제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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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앞으로 충북 청주.충주 등에는 할인점이 새로 들어서기가 어려울 전망이다.

충북도가 시.군별로 적정 할인점 수를 인구 15만명당 1개로 정하고, 이 기준을 넘으면 제동을 걸기로 했기 때문이다. 건축허가.교통영향평가 때 제한하겠다는 얘기다.

현재 청주는 7개 점포(허가난 2곳 포함), 충주는 2개가 있어 이미 이 기준을 초과했다. 이에 앞서 충북도는 할인점 진출 과정에서 교통영향평가를 형식적으로 했다며 시민단체들이 비판한 건설교통국장을 최근 경질했다.

충북도 관계자는 "할인점이 속속 들어와 재래시장이 붕괴되고 연간 4천억원에 이르는 돈이 서울로 유출되는 등 지역경제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이 제도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할인점 업계는 이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자체를 상대로 한 소송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의 반지명 부회장은 "유통업체의 대형화와 통합화는 세계적인 추세"라며 "지자체의 이 같은 규제 움직임은 시장 원리에 어긋나는 것으로 결국 소비자들의 피해로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할인점 등 대형 유통업체가 지방 출점을 크게 늘리면서 현지 지자체.시민단체.상인 등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지자체들은 이와 관련, "지역경제 붕괴를 막기 위해 할인점 진출을 저지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형 유통업체들은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말도 안되는 규제"라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확산되는 갈등=이달 말 열릴 전국 시ㆍ도지사협의회에는 대형 유통업체의 지방 진출을 제한하는 방안이 안건으로 상정될 예정이다. 할인점의 급속 확산에 맞서 지자체들이 공동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지자체들은 최근 몇년간 할인점의 과다한 진출로 지역경제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며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할인점 점포수는 현재 전국적으로 2백40여개에 이른다.

또 전주 YWCA 등 이 지역 시민단체 40여곳은 지난달 '이마트 지역법인화 연대회의'를 결성하고 공청회 등을 잇따라 열고 있다. 할인점 때문에 지역 자금이 서울로 빠져나간다며 시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할인점 업계는 현실성이 없는 주장이라며 맞서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점포 대형화와 효율성 제고를 통한 가격 인하가 할인점의 생명인데 지역마다 법인을 따로 둘 경우 이런 경쟁력이 없어져 결국은 소비자가 피해를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할인점인 A사는 호남지역 2곳의 매장 부지를 3년째 방치하고 있다.

해당 점포가 들어설 관할 지방자치단체와 건축허가 등을 놓고 지루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할인점이 들어서는 모든 곳에 크고 작은 분쟁이 있다고 보면 된다"며 "지자체장들이 목소리 큰 지역상인들의 눈치를 보느라 정당한 이유 없이 행정절차를 지연시키는 사례가 많다"고 주장했다.

◆할인점 규제보다 지역상권 지원 필요=충북도가 제시한 인구 15만명당 1점포 기준은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논문 '국내 할인점 시장 현황과 성장 전략'에 근거한 것이다. 2년 전 작성된 이 논문은 국내 할인점의 적정 점포수를 2백75개로 보았다.

그러나 해당 논문을 작성한 정연식(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박사는 "최근 할인점들이 도심형 소형점포 개발 등 틈새시장을 개척하고 있어 2005년까지 시장이 확대될 여지가 있다"며 논문과는 다른 견해를 피력했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앞으로 전국에 1백52개 점포가 더 신설돼도 사업성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미국.일본에 비해 국내 할인점의 인구당 점포 수가 아직 적으며 지역마다 경제력의 차이가 있어 일률적인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편 정부는 할인점에 대한 인위적인 규제보다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재래시장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정책을 쓸 계획이다.

산업자원부의 김성환 유통서비스정보과 과장은 "할인점이 재래상권 위축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소비자 복지와 유통산업 발전에 공헌하는 면도 있다"며 "지역 내 재래시장의 현대화와 경쟁력 강화는 할인점 규제가 아닌 별도의 지원정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주=안남영기자,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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