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 DMLWL" 담겼지만 "이론의 여지" 아직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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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식민사관의 잔재를 청산하고 주체적인 입장에서 민족사를 발전적으로 해석·서술하려는 의지가 개편되는 국사교과서에는 담겨있다. 일본교과서의 사실 왜곡파동에 따른 한-일관계사의 재검토도 이번 국사교과서 개편의 큰 특징이다.
민족의 기원을 50만 년 전으로 올려놓고 삼국시대 이전의 고대사부분을 재정리, 대폭 보강했다. 이와 함께 근대 및 현대사부분에서 대일·대청 등 대외관계 단원이 신설되고 일제의 침략과정과 이에 대한 민족의 독립운동이 강조됐으며, 일본의 입장에서 정의된 헤이그 밀사 등 역사용어가 헤이그 특사로 바뀐 것을 비롯, 자주적·능동적 입장에서 사실이 서술된다.
이 같은 국사 교과서 개편은 아직 학계의 연구결과가 완벽하게 뒷받침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역사를 민족주체적 입장에서 발전이란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있다는 검에서 획기적이다. 가령 한민족은 북쪽에서 계속 이동해왔고 문화의 원형은 모두 전래돼 왔다는「이동 설」을 버리고 「분포 설」를 택한 것이라든지, 고대 국가의 형성과정을 발전이론으로 재해석하고, 일본 문화의 원형이 우리의 고대문화에서 전수된 과정을 상세히 서술한 것은 정체된 입장에서만 보아온 민족사의 관점이 발전적 입장으로 크게 바뀐 것이다.
특히 고대사부분에서 대폭적인 수정이 있었는데 종래 이동 설에 근거한 서술은 우리 민족의 기원이나 문화의 원형을 모두 대륙에서 찾았으나 이번 개편 교과서는 오히려 우리 민족이 한반도는 물론, 대륙의 유하· 요하·만주일원에까지 분포돼 있었다는·학설을 취해 주체적 발전과정이 강조됐다.
국가의 발전단계를 지금까지의 부족국가-부족연맹체-고대국가에서 읍락 중심사회-국가의 성립=고대왕국(삼국)으로 바꾼 것은 역사발달의 단계를 국가형성에 관한 새로운 이론에 따라 발전적으로 해석한 시각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선사 및 삼국·통일신라시대의 문화가 일본에 미친 영향을 상술한 것도 능동적 입장에서 우리의 역사를 해석한 결과다.
우리역사의 능동적 해석은 근·현대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근대화의 내재적 발전과 능동적 노력이 강조되고, 일제의 침략과정과 민족의 독립운동과정이 상세히 기술됐다. 개화사상이 대두·형성되는 과정에서 선구적 신학자들의 문호개방· 대외통상론 주장이 상세히 서술됐다.
3·1운동과 광주학생운동·청산리 전투 등의 참가인원· 피해상황· 전과 등이 상세히 기술되고 일제의 식민통치 상황 서술이 강화됐다.
헤이그밀사는 헤이그특사로 바뀌고 그들의 활약내용이 각주(각주)에 상세히 기록되며, 우리의 입장에서 고종은 고종황제, 민비는 명성황후로 바뀌는 등 서술용어가 대폭 손질된 것도 큰 변화다.
개편되는 교과서는 이 같은 긍정적 의지를 담고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도 학계의 연구결과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계속 보완해야할 과제를 그대로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단군 조선의 건국을 객관적 사실로 기록하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는 청동기 사용이 기원전 10세기쯤으로 알려져 있고, 따라서 기원전 2333년과의 간격을 설득력 있게 선명하지 않는 한 중· 고교생 단계에서는 지식체계에 혼란을 줄 우려가 없지 않다.
이 같은 사실은 한사군의 위치 문제에서도 보인다.
한반도 밖이라는 설과 대동강 부근이라는 설을 동시에 소개하고 있는데 학생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
이번 교과서 개편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사실이지만 고대사 연구에 관한 한 학계의 미숙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교과서는 정설을 반영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려나 이번 개편과정을 보면, 어느 것이 정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사실도 없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히 고대사연구학자의 새로운 분발이 있어야할 것 같다.
이와 관련, 국사교과서의 국정에 대한 문제도 재검토돼야할 단계에 온 것 같다. 국정으로 할 경우, 학자들의 중지가 모인다는 강점도 없지 않지만 획일적 모델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없지 않다. 연구 결과의 다양한 서술에서 역사학의 발전은 물론, 교과서의 질적 향상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태섭 <서울대 교수·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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