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청와대 개편 빠를수록 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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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고 국정의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대대적인 인사 개편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에서도 김기춘 비서실장과 비서관 3인(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인사 개편이 시급한 첫 번째 이유는 권력 누수를 막기 위해서다. 비선(秘線) 실세들의 국정 농단 여부, 문건 유출과는 별개다. 집권 2년차에 대통령의 동생과 측근, 전·현직 비서관들이 진흙탕에서 난타전을 벌이는 비정상적 상황이 벌어진 근본 원인을 수술하지 않고선 남은 3년의 원활한 국정운영은 기대하기 힘들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윤창중 대변인 성 추문 사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커다란 위기를 개각과 청와대 개편으로 돌파했다. 하지만 ‘얼굴’만 바꿨을 뿐이다. 근본적 문제로 지적돼 온 소통 부재와 베일에 가려진 의사 결정, 인사 비밀주의는 여전하다. 이런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과 인사 스타일이 문건 사건을 불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박 대통령은 각 부처·수석실에서 올린 보고서를 밤 늦도록 읽으면서 꼼꼼히 국정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몸에 밴 스타일이다.

 토론이나 대화를 통한 의사결정이 아닌 일방통행식 일 처리 방식은 ‘문고리 권력’이란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박 대통령을 수족처럼 보좌해 온 ‘문고리 3인’의 영향력과 입김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 대통령은 이들을 “일개 비서관이고 심부름꾼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세상은 이들을 ‘권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엄청난 인식의 괴리가 있는 상태다. 이들을 그대로 놔두고는 국정을 원활하게 이끌어나가기 힘들다.

 ‘문고리 3인’도 스스로 진퇴를 결정해야 한다. 이들은 정윤회씨와 전화 통화 여부, 인사개입 정황을 둘러싸고 여러 차례 거짓말을 해 신뢰를 잃었다. 비서관의 권한을 넘는 월권과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국민적 의혹을 받고 있고 신뢰마저 저버린 이들이 제대로 대통령을 보좌할 수 있겠는가. 이들이 부속실에 계속 남아 있는 한 ‘문고리 권력이 좌지우지한다’는 인식이 굳어져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만 더해질 뿐이다.

 기강 해이를 바로잡는 차원에서도 청와대 개편은 시급하다. 시중에 떠도는 루머를 정리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버젓이 청와대에서 만든 문건이 시중에 흘러다니고 있다. 더욱이 지난 5월 유출 사실을 알고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문건 사건이 벌써 20일째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청와대 개편은 빠를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