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대입 논술고사 가이드라인] 지침 나왔지만 논술 - 본고사 경계 모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교육인적자원부가 30일 제시한 논술고사 기준(가이드 라인)은 '현실론'과 '원칙론'사이에서 원칙론을 선택했다. 영어 제시문의 경우 현실적으로는 영어교육의 강화 추세에 맞춰 논술 고사의 일반 형태가 된 것이 현실이다. 교육부는 영어 제시문을 허용할 경우 영어 본고사를 허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판단했다. 논술 개념에 충실하지 않은 논술고사는 본고사에 해당한다는 원칙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그러나 논술고사의 개념이 추상적이고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교육부는 고육지책으로 '논술고사에 해당하지 않는 유형'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기준은 교육부도 인정하듯이 포괄적이다. 논술인지 아닌지 '경계'가 모호한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교육부는 이에 따라 대학이 실시한 논술고사를 사후 심의해 본고사 해당 여부를 판정하고 그 결과를 공개함으로써 '판례화'할 방침이다. 단순히 기준을 위반한 대학을 제재하는 데 끝나지 않고 심의 결과를 축적해 이미 제시한 기준을 보완하고 대학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 논술과 본고사를 가르는 기준=교육부는 논술고사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논술고사의 개념부터 정의했다. '제시된 주제에 관해 필자의 의견이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도록 하는 시험'이다.

이에 따라 논술고사 여부의 판단기준으로 ▶답안 유형이 서술형으로 돼 있는지, 아니면 단답형 또는 선다형으로 돼 있는지 ▶종합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측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국.영.수 등 특정 교과의 지식을 측정하는 것인지 ▶논리추론 등 과정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 암기 위주의 결과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지 등을 제시했다.

또 ▶다양한 답이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정형화된 하나의 답을 요구하는 것인지 ▶주제에 대한 주장.의견 진술의 전개 과정을 평가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식의 숙지 여부를 주로 평가하는 것인지 ▶고교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하고 이해한 학생들이 풀 수 있는 수준의 것인지, 아니면 고교 교육과정 수준 이상의 지식수준을 요구하는 것인지 등도 판단기준으로 들었다.

이런 각각의 판단기준에서 후자(後者) 쪽은 논술고사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 현행 논술고사에 적용해 보면=올해 수시 1학기 논술문제에 교육부가 제시한 기준을 적용해 보면 출제 가능한 문제 유형을 가늠할 수 있다. 전북대 수리문제의 경우 '분수방정식 1/x - 1/x(x-1)= -1을 풀고 풀이과정을 제시하시오'라는 문제로 답과 풀이과정을 요구했다. 앞으로는 이런 형태로 출제해선 안 된다. '영어 지문의 요약과 일부 번역'을 요구한 이 대학의 영어 논술 문제도 앞으로 출제할 수 없는 형태다. '외국어로 된 제시문의 번역이나 해석을 필요로 하는 문제'는 안 된다는 기준에 걸리기 때문이다.

건국대 문제는 두 국어 지문을 제시하고 '일본 침략세력과 독일 전체주의에 순응한 두 방식에 해당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 본인 의견을 밝혀라'라는 문제로 '전통적인'논술 형태다. 앞으로도 전혀 문제가 안 된다.

경희대.고려대(언어논술)도 이런 형태의 논술이긴 하지만 제시문 중에 영어가 들어 있어 앞으로는 영어 제시문을 빼야 한다.

교육부는 논란이 된 고려대.이화여대의 수시 1학기 수리논술에 대해선 '본고사 형태'라고 못박지는 않았다. 서남수 교육부 차관보는 "이들 문제는 '경계'가 모호한 문제"라며 "그러나 앞으로 동일한 형태의 문제를 내려면 사전에 심의를 받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 논술 비중 줄어드나=영어 제시문 불허 등 논술고사 기준에 대학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준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게 대학들의 얘기다.

이렇게 되면 논술고사의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게 입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논술비중이 커지는 2008학년도 대입 전형에도 영향이 있다. 오종운 청솔교육평가연구소장은 "논술 가이드라인이 지켜지면 논술의 변별력은 상당히 떨어지게 되고 상대적으로 학생부와 수능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이와 관련,"논술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면 채점의 어려움 등을 감안해 답이 좁혀지는 본고사 형태로 갈 수밖에 없다"며 "논술 비중을 줄이고 학생부와 수능을 많이 반영하는 입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