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별 논술 외국어 제시문 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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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수시 2학기 전형부터는 대학이 논술고사에 영어 등 외국어로 된 제시문을 출제하지 못한다. 수학.과학과 관련된 풀이 과정이나 정답을 요구하는 문제도 낼 수 없다. 이에 따라 대학별 고사에서 일반적으로 실시되는 영어 혼합형 논술이 사라지고 고려대.이화여대 등 일부 대학에서 실시하는 수리논술도 현행 형태론 실시할 수 없게 된다. 이 같은 기준을 어긴 대학에 대해선 학생정원 감축, 예산지원액 삭감 등 강력한 행정.재정적 제재가 취해진다.

교육인적자원부는 30일 이런 내용의 논술고사 기준(가이드 라인)을 확정해 발표했다. 서남수 교육인적자원부 차관보는 "서울대 등 일부 대학의 2008학년도 새 대입전형안 공개 이후 본고사 부활 논란이 제기됨에 따라 논술고사에 대한 사전 기준을 제시하고 사후 심의를 통해 제재함으로써 논술고사가 편법적인 본고사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교육부 31조간 대입 논술 가이드라인(아래한글자료)

그러나 수시 2학기 논술고사를 한 달여 앞두고 논술 유형이 바뀌게 됨에 따라 지망한 대학이 예고한 유형에 맞춰 논술을 준비해 온 수험생들은 혼란을 겪을 전망이다.

교육부는 이날 논술고사에 해당하지 않는 문제의 유형을 제시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논술고사 기준을 제시했다. ▶단답형 또는 선다형 문제▶특정 교과의 암기된 지식을 묻는 문제▶수학.과학과 관련된 풀이 과정이나 정답을 요구하는 문제▶외국어로 된 제시문의 번역이나 해석을 필요로 하는 문제 등이다.

교육부는 외국어 제시문 금지에 대해 "찬반 양론이 있었으나 제시문을 해석할 수 없으면 논술 자체가 불가능할 경우 이는 실제로 외국어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이라는 다수 의견을 수용,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영어 제시문은 그러나 대학들이 '허용'을 요구해 온 사안이다. 서울대 이종섭 입학관리본부장은 "영어 제시문이 본고사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일단 교육부의 영어 제시문 불허 방침을 수용키로 했다"며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다시 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대학에서 실시한 논술고사가 이 같은 기준을 벗어났는지 심의하기 위해 교사.교수.전문가 등 18명으로 '논술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키로 했다. 위원회는 올 수시 2학기부터 대학의 모집시기가 끝난 직후마다 대학별 고사의 개요와 문제를 받아 심의한다.

각 대학이 출제를 앞두고 사전 심의를 요청할 경우에도 심의해 의견을 제시한다. 심의 결과에 따른 제재 유형과 수준은 해당 학년도의 모든 전형이 마무리된 뒤 결정된다.

서울대 백순근(교육학) 교수는 이에 대해 "입시에서 논술이냐, 본고사냐 등의 기준을 제시하며 규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며 "조기에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돌려주는 등 대학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3 아들을 둔 강도금(44.서울 가락동)씨는 "학원에서 영어논술을 준비해 왔는데 수능이 80여 일밖에 안 남은 시점에 갑자기 유형이 바뀌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김남중.고정애.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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