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 유출 핵심 고리 끊어져 … 검찰 곤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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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 자살한 최모 경위의 친형 최낙기씨(왼쪽 셋째)가 14일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을 떠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천병원에 안치됐던 최모 경위의 시신은 이날 오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겨져 부검이 실시됐다. [이천=신인섭 기자]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던 검찰의 ‘정윤회 동향’ 문건 유출 수사에 급제동이 걸렸다. 주요 피의자였던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소속 최모(45) 경위의 자살로 그를 연결고리로 지목해온 문건 유출 경로에 대한 검찰 조사에도 난항이 예고되고 있다.

 최 경위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직후인 지난 13일과 14일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엔 긴장감이 흘렀다. 휴일임에도 전원 출근한 수사팀 간부·검사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경위 파악에 분주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수사 중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유감으로 생각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수사과정에서 어떤 강압행위나 위법한 일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향후 수사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진상규명에 큰 차질이 생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확보된 증거와 관련자 조사를 바탕으로 예정된 절차에 따라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건 작성자 박관천(48) 경정이 청와대에서 출력해 나온 문건들을 정보1분실에 보관했고, 이를 최 경위와 한모 경위가 복사해 세계일보로 유출했다’는 검찰의 큰 그림엔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유출문건은 크게 세 종류다. ▶‘비선(秘線) 실세’ 논란을 촉발시킨 ‘정윤회 동향’ 문건 ▶‘박지만·서향희 동향’ 문건 ▶‘청와대 비서관·행정관 감찰’ 문건이다. 검찰은 이 중 세계일보가 지난 4월 2일 보도한 ‘청와대 행정관 감찰’ 문건에 대해 박 경정이 청와대에서 반출해 온 문건을 최 경위가 복사해 세계일보로 넘긴 것으로 의심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사건의 핵심인 ‘정윤회 동향’ 문건과 ‘박지만·서향희’ 문건도 최 경위를 연결고리로 외부에 유출된 것으로 보는 구도다.

 최 경위는 검찰 수사와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이 같은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경정이 가져다 놓은 문건은 복사했지만 해당 문건에 ‘정윤회 동향’ 문건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은 사건의 본류인 ‘정윤회 동향’ 문건을 유출한 부분에 대한 증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청와대 행정관 감찰’ 문건 유출에 관한 증거 등을 앞세워 최·한 경위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이를 기각하며 “현재까지 범죄혐의 소명 정도 등에 비춰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결국 ‘주범’ 격인 박 경정과 최·한 경위의 공모관계를 밝혀내지 못한 채 ‘종범’ 격인 최·한 경위만 2차 유출 혐의로 구속영장을 우선 청구했다는 게 패착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글=박민제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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