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항 90일」에 일단 성공|백14회 정기 국회를 결산한다-국회 출입 기자 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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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표결 처리 안건 3건뿐>
-제114회 정기 국회 회기가 꼭 1주일 남았군요. 그동안 여야간 쟁점이 되어왔던 정치 의안에 대한 처리 문제가 3당 총무 회담에서 타결됐으니 남은 회기는 방망이 치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번 정기 국회는 개회 초부터 뚜렷한 이슈 없이 시작되더니 끝까지 조용히 가는군요.
-여당 입장에서 보면 성공적인 국회였죠.
-실명제 문제와 의료 보험 일원화 문제로 재무위와 보사위가 며칠 공전한 것을 제외하곤 별로 큰 말썽은 없었던게 사실입니다.
-막판에 정치 의안 때문에 상임위 활동이 1주일 가까이 마비된 일도 있긴 하지요.
-그러나 옛날 국회에 비하면 「양반」이에요. 앞으로 남은 의안이 90여건 되지만 실제 처리할 것은 60여건도 채 안되는 데다가 정치 의안과 자원 관리 법안 등 말썽의 소지가 있는 것은 모두 내년으로 미뤄져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 많은 안건을 다루면서 여야간 표결 처리했거나 처리할 것이 전투 경찰대 설치법 개정안·병역법 개정안·실명제 법안 등 단 3건에 불과하다는 것을 봐도 조용한 국회였음이 실감돼요.
-국회가 이렇게 시끄럽지 않았던 것은 금년 들어 임시 국회가 자주 열려 그때그때 거를 문제를 미리 걸렀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어요.
-그것보다는 민한·국민당 등 야당의 국회 전략이나 자당의 의사를 관철하는 방식이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점도 부인하기 어렵지요. 과거에는 예산안과 상임위 활동을 연계시킨다거나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투쟁 목표를 세워 초 강경 일변도로 몰아가곤 했지만 이번에는 유연한 셈이었죠.

<"전부 아니면 전무" 탈피>
-야당이 새 시대 새 정치 스타일에 「순치」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고 야당다운 근성이 줄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야당이 과거에 비해 문제 제기 능력 면에서 상당히 떨어졌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더군요.
-그래서 결국 국회의 민의 수렴 기능 자체가 약화되지 않을까 걱정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하기야 민한·국민당의 대변인 성명보다는 의정 동우회 대변인이나 군소 정당 대변인의 성명이 훨씬 잦았던 것이 사실 아닙니까.
-그렇지만 예산 심의 과정에서 3백23억원의 방위비를 삭감한 것은 주목할만한 일입니다.
-방위비 삭감은 국회 기능의 내실화라는 측면에서도 평가할 일입니다. 처음 방위비 삭감 아이디어가 국회 밖에서 나왔다는 말도 있는데 야당의 문제 제기→여당의 동의→행정부 납득이라는 과정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방위비 삭감과 함께 여야가 서민 부담의 감소, 건전 재정 유도라는 차원에서 1천억이 넘게 예산 규모를 깎고 국채 발행 규모도 2천억이나 줄인 것은 퍽 바람직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민한당 일각에선 너무 예산 삭감 규모를 낮게 잡았다는 비만이 일어 김현규 예결위 간사가 사의를 표명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지요.
-이번 국회에 처음 데뷔한 김상협 국무 총리 내각에 대한 평가는 어땠습니까.
-김 총리 자신이 재야에도 중망이 있고 학계의 원로라는 점에서 기대가 컸던게 사실 아닙니까.
-그러나, 정기 국회를 한번 거치고 난 후의 김 내각에 대한 평가는 별로 후한 것 같지가않아요.
-의원들의 질문 수준은 과거보다 확실히 높아진데 비해 행정부의 답변 자세나 수준은 못 미쳤다는 것이 여야의 공통된 평가지요.

<문제 제기 능력 떨어진 듯>
-「정치 총리」로 기대했던 김 총리였기에 현안 정치 문제들에 대한 차원 높은 소신개진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모양인데 김 총리의 국회 답변도 과거와 특별히 다른 점이 별로 없었다는 거지요.
-반면 이번 정기 국회에서 야당의 발언 수위는 상당히 높았던 것 같아요.
-비록 일부 야당 의원들의 본회의 대 정부 질문 발언이 속기록에서 삭제되기는 했지만 할 수 있는 얘기는 거의 모두 거론했던 것 같습니다.
-본회의 대 정부 질문이 한참이던 지난 10월8일 민정당이 당직자 회의를 열어 야당의 발언 수위에 제동을 거는 「엄포」를 놓았던 것이 더 이상의 확대를 막기는 했지만….
-유치송 민한당 총재도 1대 국회 개원 초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있을 정도로 발언의 폭이 넓어졌다고 자평 하더군요.
-민정당은 야당의 발언에도 신경을 썼지만 행정부 측의 적극적인 해제 옹호 자세 미흡에도 불만을 표했습니다.
-총리나 일부 각료들이 제5공화국의 정통성이랄까 개혁 의지의 확산, 역사적 사명감 등에 대한 소신 있는 태도가 미흡했다는 거죠.
-이 같은 여당의 생각은 공식·비공식으로 내각에 전달되기도 했어요.
-의원 발언이 좀 나아진 반면 행정부 측 답변에는 문제가 있었어요. 이번 국회처럼 부실 답변 시비가 잦았던 때도 없었던 것 같아요.
-예결위에서는 외무장관이 「비 외교적」 답변을 해 말썽이 되기도 했고 적어준 답변을 제대로 못 읽었다는 장관도 있었어요. 그런가 하면 질문에 대해 『모르겠다』며 보따리를 챙긴 장판도 있어 여야 의원들이 함께 불쾌해한 일도 있었어요.

<발언 수위 상당히 높아>
-한마디로 소관 업무를 제대로 파악 못하는 인상을 주는 각료들이 더러 있다죠.
-그래서 내각의 국정 수행 능력이 의심스럽다고 야당 의원들이 개탄했지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정기 국회 중에 연말 개각설이 밑도 끝도 없이 한때 나돌기도 했어요.
-정부의 차관급 이상에 대한 평가 작업이 있었다는 설이 나돌았는가하면 참신한 인물에 대한 신상 명세서 작정설도 한 때 돌았습니다.
-너무 성급한 추측들이었군요. 개각은 내년으로 넘어갈 것 같다는 추측이 많잖아요.
-실명제 파동도 이번 국회에서 기억할만한 일입니다.
-정부 여당이 실시 연기를 결정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도 국회서는 예산안과 법안 통과를 위해 연기 결정이 없을 것처럼 넘어갔으니….

<잦았던 부실 답변 시비>
-김준성 부총리가 예결위에서 『정부 원안대로 심의해 달라』는 말을 되풀이했지요.
-민정당도 실명제로 큰 고생을 한 셈입니다. 결국 막판에 수정 법안을 냈잖아요.
-실명제에 관한 한 국민당이 가장 일관성이 있었고 반면 민한당은 뚜렷한 주견 없이 민정당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연계시켜 작전을 짜야할 재무위의 세법 심의와 예결위 활동을 야당은 제대로 연계시키지도 못했어요.
-민한당은 김 정책 심의회 의장 책임 아래 예결위를 끌고 나가도록 했기 때문에 임종기 총무가 발발 들여놓을 틈이 없었지요.
-결국 김 의장의 전략대로 예결위가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원내 전략이라는 큰 차원에서 보면 문제가 있어요.
-여당에선 예산안이 순탄하게 처리됐다고 김 의장에 퍽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지요.
-사실 합리성을 대여 투쟁의 전면에 내건 김 정책 의장 태도에 대해서는 여야 의원 상당수가 긍정적이었습니다.
-여당 측은 입버릇처럼 합리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야당이 타당성 있게 찌르면 아프더라도 안 들어줄 수가 없더라는 얘기들을 하더군요.
-이번 국회는 그런 점에서 합리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중시되고 존중됐던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재무-예결위 연계 못시켜>
-이번 국회서는 저질·인기 발언도 많이 줄었고 의안 심의 자세도 매우 진지해졌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여당 쪽에서는 보기 드문 조용한 국회를 치렀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하는 것 같지만 야당 쪽의 얘기는 좀 달라요.
-이번 국회에서 과연 야당이 무엇을 얻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많은 야당 의원들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정치 회복」을 목표로 잡아놓고도 정치 의안에 대해서는 처리 시한만 약속 받았을 뿐 어떤 보장이나 언질을 못 받았고 구체적인 성과는 없다는 주장입니다.
-유치송 민한 총재나 임 총무는 지자제·국회법 개정안 등에 대해 매우 고무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정기 국회 결산을 흑자로 보는 것 같던데요.
-흑자든 적자든 여야 협조 체제를 계속 끌어가기 위해서는 여당도 정치 의안에 좀 성의를 보여야겠지요.
-다음 선거가 가까워 올수록 야당의 목적은 커지게 마련이니까….
-각 당은 폐회가 되면 되풀이 말아야할 나빴던 점은 무엇이었고, 축적해 나가야 할 좋은 점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면밀히 따져보는 노력을 하는게 좋겠어요.
-각 당의 정기 국회 결산이 어떻게 나올지 어디 두고 봅시다. <정리=고흥길 기자>

<참석자>
▲송진혁 정부장 대우
▲고흥길 차장
▲전육 기자
▲이수근 기자
▲김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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