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 「수준이하」 운좋은 복싱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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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8개의 금메달에 너무 심취해서는 안될것같다. 그것보다, 모든 나라 선수들의 성공과 실패가 엇갈리는 드라머의 주변에서 더욱 값진 교훈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다시 도전해야하는 새로운 과제가 부단히 닥쳐오기 때문이다.
격전의 현장에서 피부로 느낀 실감은 한국의 금메달 28개가 「예상치 않은 행운」이었다는 것이며 이점에 관해선 각종목 전문가들이 거의 동감이다.
실질적인 경기력이 4년전 방콕대회에 비해 괄목할만큼 향상되지 않은 「사실」은 한국스포츠의 자존과 자만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는다.
뉴델리 아시안게임이 남긴 몇가지 뒷얘기로부터 음미해볼만한 교훈을 찾을수있다.
○…금메달풍작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복싱이 「한국의 행운」을 대표하는 케이스중 하나다. 당초 우려했던 그대로 한국복싱은 탁월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아시아를 휩쓴것은 다른 국가선수들의 수준저하 때문이었다.
AP통신의 뉴델리주재기자인 「고페시·N·메라」는 『아시아복싱이 수렁속으로 곤두박질했다. 일종의 공활이다』라고 혹평했다.
일본과 중동세의 퇴조로 전체급에 걸쳐 한국의 상대는 북한정도였다.
○…김진호는 틀림없는 아시아 최고의 여궁사다. 그러나 단1점차로 개인종합의 금메달을 놓친 사연의 뒤에 배고픔이 있었다면 기막힌 얘기가 아닐수없다. 경기가 상오9시부터 시작되므로 경기장에 8시반까지는 도착해야 했다. 그래서 첫날 선수촌을 상오 7시반께 출발했다. 이통에 김진호등 선수들은 아침식사를 제대로 못했다. 임원들은 비상식(비상식)을 미처 준비할 생각을 못했다.
약30분간의 연습을 마치고 난후 금진호는 『배가 고프다』고 하소연했으나 속수무책. 이날 2개종목경기에서 김진호는 크게 부진했다. 북한의 오광순에 6점이나 뒤졌다. 이튿날 분발하여 추격했으나 때가 늦었다. 시위를 잘못당기는 실수이전에 이미 패인이 있었던 것이다.
선수의 컨디션을 최강으로 유지시키는 준비의 소홀때문에 큰일을 그르치고만 뼈아픈 경험이었다.
○…지극히 미세한 감각과 감점이 작용하는 탁구. 첫이벤트에서 북한을 제압하는데 수훈을 세운 김완은 배짱탁구의 표본이었다. 과감성과 모험심, 그리고 패기로 북한선수들을 차례로 뉘었다.
김완을 뺨치는선수가 여자인 윤경미다. 윤경미는 절대절명의 위기(단체전 마지막단식)에서 역전승을 거둔 기적의 창조자다.
그 불퇴전의 힘과 정신력이 어디서 나왔을까. 윤은 경기시작 불과 30분내지 1시간전에 경기장안 모퉁이에서 잠깐의 잠을 즐기는 비범한 능력을 지녔다.
정신적 안정을 도모하는 방법을 모든 선수들이 이와같이 나름대로 터득해야할것이다.
○…육상여자단거리의 모명희는 동메달3관왕이다. 『조금만 더 열심히 훈련했으면 금메달을 딸수있었을텐데….』 스스로 후회를 했다. 학업(서울대) 때문에 최대의 훈련을 못한 모는 최근 부쩍 살이 쪘다. 좋은 재목을 살리지 못했다고 외국육상인들이 더 안타까와했다.
모와 비교할것은 못되나 필리핀의 히로인 「리디아·드·베가」(여자1백m우승)는 미모가 뛰어난 19세의 대학생으로 최근 영화출연까지 했으나 하루3시간의 훈련을 위해선 만사를 제쳐놓는다고 했다.
○…기자행세를 한 북한의 한 임윈은 복싱결승의 남북대결때 『남한선수가 더 잘할것같다』라고 말했으나 막상 공이 울리자 금세 안색이 굳어지며 담배를 끼운 손가락이 바르르 떨렸다. 그들은 승부에 대한 접착이 병적이었다.
축구장의 난동, 그리고 복싱심판들의 호텔을 야습, 공포분위기를 조성한것 등은 이러한 이상체질 탓이었다. 『북한도 3년후 스포츠수준이 세계적이 될것』이라는 한 북한기자의 허풍을 들었다. 그러나 이말이 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의식한 특별한 강화훈련계획이 추진되고 있다는 의미로 들려지기도 했다.
『서울대회에 북한은 체조·사격등 자신있다고 생각되는 소수종목만 출전시킬 공산이 크다』는 한 일본기자의 추측을 전하자 북한임원은 웃기만 했다.
○…중공은 대국답게 깨끗한 매너와 도량을 여전히 과시했다.
아시아축구연맹(AFC)총회에서 중공은 한국을 집행위원국으로 선임(북한은 제외)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당초 회장만이 내정한 후보국에는 한국이 빠져있었으나 이를 수정한 것이 중공대표였다.
한국남자농구가 예상외로 중공을 꺾고 우승하자 방렬감독은 『나의 작전이 이긴것이다』 라고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전날 한국을 마침내 누르고 정상을 탈취한 중공여자농구는 선수들이 얼싸안고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감격했으나 「양·보용」 코치의 첫마디는 『기쁘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한국에 많은 것을 배워야한다』 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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