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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공부 다 잡았다, 제주 유소년팀의 방통고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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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제주 U-18팀은 매주 3차례씩 영어회화 수업을 진행해 선수들의 영어구사능력 향상을 돕는다.

고교 엘리트 축구선수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을까. 운동에만 전념하는 게 국내의 일반적인 현실이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방송통신고등학교 제도를 활용해 공부와 운동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프로축구 제주유나이티드 유소년팀의 성공사례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제주 18세 이하 유소년팀(U-18팀)은 여느 K리그 구단들처럼 연고지역 내 고등학교와 교육 협약을 맺지 않았다. 대신 방송통신고 제도를 활용해 선수들의 교육을 자체 진행한다. 지난해 1월 제주일고 부설 방송통신고에 1·2학년생을 편입시켜 첫 발을 내딛었고,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아이디어는 제주도 내 골프 유망주들의 학습 방식에서 따 왔다. 골프 선수들이 방송통신고에 적을 두고 온라인 강의로 공부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설동식 제주 유스팀 총감독이 과감하게 도입을 결정했다. 방송통신고는 일반고와 똑같이 3년 과정이며, 정식 고교 학력을 인정받는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동영상 수업으로 교과 과정을 이수하는 게 일반 고교와 다른 점이다.

 초창기엔 낯선 방식에 대해 우려가 적지 않았다. ‘편법을 동원해 선수들의 학습권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설 감독은 일일히 대응하지 않았다. 대신 높은 대학 진학률로 새 학습 시스템의 효용성을 입증했다. 방송통신고 방식으로 바꾼 이후 올해 제주가 배출한 고3 졸업 예정자 9명 중 8명이 수도권 대학에 진학했다. 인천대 진학 예정인 이기환(18) 군은 “훈련도 공부도 탄력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면서 “운동을 마친 뒤 매일 동기들과 동영상 강의를 시청했다. 방송통신고 시험 문제가 일반 학교보다 조금 쉽게 출제되긴 하지만 평균 70~80점을 받을 정도로 성적도 올랐다”고 말했다.

 방송통신고 시스템을 적용한 뒤 선수들의 상황을 감안한 맞춤형 수업이 가능해졌다. 편한 시간대를 골라 같은 연령의 선수들이 함께 동영상으로 공부한다. 어려운 부분은 강의 진행을 멈춘 뒤 머리를 맞대고 토의한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2주에 한 번씩 제주일고에서 실시하는 오프라인 수업을 통해 해결한다.

 등·하교가 없는 온라인 수업임에도 선수들의 만족도는 높다. 더구나 제주 구단이 철저히 학사 관리를 하면서 선수들의 학습 의욕도 높은 편이다. 매일 정해진 시간이 되면 이원식 U-18팀 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학년별 수업이 이뤄진다. 이의형(16) 군은 “학교 수업 같진 않지만 나름대로 규칙을 정해놓고 꾸준히 강의를 시청한다”면서 “감독님이 학습 진행 정도를 꼼꼼히 체크하기 때문에 딴 생각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제주는 일주일에 세 차례 영어교사를 클럽하우스로 초빙해 회화 수업도 실시한다.

 설동식 총감독은 “공부하는 선수를 키우자는 취지에 공감하지만 기존 교육 시스템에 갇힐 필요는 없다고 본다”면서 “우리 팀이 운용 중인 방송통신 교육 방식을 문의하는 학교 감독들의 전화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제주=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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