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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이 있는 책읽기] 고장난 물건 속 숨겨진 가치 찾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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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장석남 시인은 '구두 수선을 노래함'이라는 시에서 구두를 수선하는 풍경을 '굽을 가는 까만 씨못과 작은 망치의 노래'라고 묘사했다. 부서지고 닳은 물건을 고치는 순간은 아름답다. 숨이 멎은 생명을 되살리는 일처럼 긴장이 감도는 사뭇 숭고한 작업이다.

예전에는 물건이 부족해서인지 '고치는 사람'도 '고치려는 사람'도 많았다. "고장 난 시계나 테레비 팔아요!"라고 외치던 고물장수의 리어카에는 솜씨 있게 손 봐서 되팔 물건이 수북했다. 요즘은 뭐든 완벽한 시대이기 때문인지 고장이 나면 곧 새 것으로 바꿔주거나 '철저한 보증 수리'를 해준다. 그래도 고장이 잦으면 퇴출이다. 청소년들이 고장 난 휴대폰을 들고 부모님과 대리점에 가면 대개 이렇게 권한다. "이 기종은 잔고장이 많습니다. 이번 기회에 새로 사세요."

망가진 것은 쓸모없는 것일까? 절대로 고장 나지 않는 것이 있을까? 고쳐서 쓰면 더욱 좋아지는 경우는 없을까?

'고장'(김병규 글, 파랑새어린이)은 '고장 난 것들에 관한 종합 보고서'이다. 만물수리점 '센머리 할아버지'와 우연히 그에게 의탁하게 된 '김수리 어린이'는 고장 난 것들을 고치러 다니며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 이들의 경험에 따르면 고장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고장이 나야 고단하게 움직이던 물건들도 잠시 쉴 수 있고, 고장 난 가로등이 하나쯤 있어야 연인들도 사랑을 속삭일 곳이 생긴다. 고장 났다고 함부로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고장 난 '초인종'도 청각장애우 할머니 집에서는 멋진 '초인등'으로 되살아난다.

그런 점에서 기계든 사람이든 가벼운 고장은 재충전의 기회이기도 하고 맹목적 돌주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고장을 탓하기에 앞서 고장의 이유를 되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오히려 제 때 찬찬히 수리하면 더 큰 고장을 막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세상에 완벽한 물건은 없겠지만 지혜롭게 잘 사용한 물건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김지은(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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