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BOOK/꿈나무] 어릴적 내 얘기 들어보겠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행복한 고물상
이철환 글, 유기훈 그림, 랜덤하우스중앙, 216쪽, 8500원

사람의 본성은 착하다. 적어도 베스트셀러 '연탄길'의 저자 이철환이 되새김질해 놓은 세상 안에서는 그렇다. 그가 이번엔 자전소설을 내놨다. 힘들고 고단한 일상 속에서 착한 장면을 뽑아내는 작가의 힘이 대단하다. 가슴 찡한 우리 이웃의 이야기로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전작과 마찬가지로 따뜻함과 감동이 에피소드 곳곳에서 절로 묻어난다.

책 제목인 '행복한 고물상'은 저자의 아버지가 실제로 운영하던 고물상 이름이었다. 산동네 단칸방에서 다섯식구가 살며, 육성회비를 제 때 못내 교실에세 벌을 서야했고 청소를 해야 할 처지. 하지만 그 누추했던 공간은 가족과 이웃의 사랑과 배려로 풍요롭고 아름답게 채워진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소설 속에서 마치 성자처럼 되살아나고 있다.

껌팔이 소녀를 데려다 라면을 끓여먹이고, 딸의 병원비를 벌려 당신 자전거를 훔쳐 장사를 한 이를 못 본 척 봐주는가 하면, 비가 새는 지붕 위에 우산을 들고 올라가 스스로 지붕이 됐다. 삶의 가치는 돈이 아닌 얽혀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다는 진실을 저자는 체험적으로 전하고 있다.

물론 이런 '도덕책' 같은 이야기만 펼쳐진 건 아니다. 가난이 부끄럽고 속상했던 소년의 속내도 고스란히 드러냈다. 예쁜 담임 선생님이 좋아 선물로 가져간 술빵. 행여나 식을세라 설레는 맘으로 서둘러 드렸는데, 선생님은 반장 아이가 가져온 제과점 빵만 드셨나 보다. 엄마가 정성스레 쪄준 술빵이 교무실 책상 위에 천덕꾸러기처럼 놓였다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곤 철환의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났다.

남루한 살림살이를 보이기 싫어 문병 온 친구들을 피해 공터로 나간 적도 있다. 그때 그는 산수 문제집을 들고 나가 찬바람에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문제를 풀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부모의 초라한 모습을 부끄러워한 자신의 마음을 용서받고 싶었다는데.

어찌 보면 뻔한 설정 같은 상황이, 경쟁사회의 악다구니 속에서 굳어질 대로 굳어진 우리의 감성을 흐물흐물 녹여낸다. 소설가 이외수의 추천사 대로 '이철환의 낱말들은 모두 눈물에 젖어서 파종된 낱말'이어서일까?

이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