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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구야, 살아만다오"-애타는 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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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7면

사경을 해매고 있는 「비운의 복서」김득구 선수(23)의 가족·진지·팬들은 희생불능이란 절망적인 현지소식에도 불구, 실오라기 같은 한가닥 소생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3일째 쾌유를 빌며 애를 태우고 있다.
김 선수의 어머니 양선녀씨(65)는 김 선수의 중태소식을 듣고 15일 하오 강원도에서 상경, 친지들과 밤을 지새우며 시시각각으로 전해오는 현지 소식에 안절부절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고 김 선수의 팬들도 기도를 올리거나 신문사에 용태를 문의하기도 했다.
여비가 없어 아들 곁으로 못가 애를 태우던 어머니 양씨는 체육부와 각계의 도움으로 셋째 아들과 함께 16일 밤9시40분 KAL016편으로 현지로 떠날 채비를 서두르면서 『득구야, 제발 무사해다오』를 되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싸움을 좋아하지 않았는데…득구가 다쳤다니 믿을 수 없어요.』 어머니 양씨는 김선수의 세째형 근룡씨(33)와 함께 6백만원을 댄 체육부의 도움으로 현지로 떠나기 위해 출국준비를 하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세째형과 함께 출국>
근룡씨는 『득구가 가난을 지겨워해 다른 방법으로는 돈을 벌수 없다며 권투를 시작하더니 이 꼴이 됐다』며 안타까와했다.
어머니 양씨가 아들이 중태라는 소식을 들은 것은 15일 상오.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반암리 집에서 버스 편으로 허겁지겁 올라온 양씨는 3남 김근룡씨(서울 신내동161)집에 도착, 밤새도록 초조하게 김 선수의 소식만을 기다렸다.
『에미한테 이게 무슨 청천벽력입니까. 날개라도 있으면 날아서라도 갈 것을…』『모든 것이 내 죄』라며 양씨는 말끝을 잇지 못했다.

<체육부서 6백만원>
양씨는 경기가 있던 14일 살고있는 곳에선 MBC-TV가 보이지 않아 2남의 집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으로가 TV를 지켜봤지만 김 선수가 사신의 펀치를 맞은 13, 14라운드는 정전으로 보지 못했다.
김선수가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도 15일 아침 딸의 연락을 받고서야 알았다. 『미국에 간다는 것도 몰라 동네사람들이 신문을 보고 전해줘 알았는데 중태가 웬말이냐』고 끝내 울음을 터뜨린 양씨는 『꿈을 이루기전에는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던 득구가 의식불명이라는데 이 에미는 곁에도 있지 못하니 안타깝기만 하다』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김 선수는 4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리가 고향인 김 선수는 아버지를 어릴때 여의고 어머니 양씨가 재가, 현재 고향집에는 계부 김호열씨(65)가 있다.
어머니 양씨에 따르면 김선수는 어릴 때부터 말이 없고 친구들과도 별로 어울리지 않는 편이었으며 바닷가에 나가 혼자 바다를 바라보며 놀곤 했다는 것이다.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며 어릴 때부터 가난을 몹시 싫어했다고 양씨는 김 선수의 어린시절을 회상했다.
학교성적은 중간정도였으며 운동을 특별히 좋아하거나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는 것.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집안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하고 고기잡이를 나가는 계부를 따라 어릴 때부터 바다로 나가곤 했었다.
어머니 양씨는 『학교를 졸업한 뒤 1년쯤 있더니 어디서 배워왔는지 모래부대를 집 마당에 달아놓고 주먹으로 때리곤 하데요. 이때 아버지한데 혼났지요. 왜 배 안타고 싸움 연습하느냐고 낫으로 몰래 주머니를 잘라내니까 그 다음날 어디론가 가버렸어요』라고 했다.
당시 김선수는 14세였다.
형 근룡씨는 『득구가 「배가 타기 싫다」며 돈을 많이 번 다음에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긴 뒤 동전 한푼 없이 서울로 올라갔다』고 했다.
김선수는 그 뒤 서울에서 철공소, 빵공장, 월부책 장사 등으로 전전하며 빨리 돈을 버는 길은 권투뿐이라는 생각에서 일과 후에는 복싱도장을 다녔다.
한편 고성군 거진읍 반암리에는 계부 김씨만이 집을 지켜 동네사람들의 위로를 받고 있다.
김씨는 『내가 청자담배와 소주를 좋아한다고 없는 돈에 고향에 찾아올 때는 꼭 선물로 사오던 득구였다』면서 『꼭 성공해서 아버님을 편히 모시겠다고 몇 번이고 이 손을 부여잡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견딜 수가 없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어머니·형 항공료-kal, 무료제공>
대한항공은 16일 김득구선수의 중태소식을 듣고 김선수의 어머니 양선녀씨와 형 근룡씨가 미국에가 김선수를 간호할 수 있도록 무료 왕복비행기표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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