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네프 사후의 소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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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소련은 나라안팎 사정이 가장 어렵다고 볼 수 있는 시기에 「브레즈네프」의 18년 장기독재가 막을 내리고 언제 어떻게 해소될지 점치기 어려운 권력공백의 과도기를 맞았다.
「브레즈네프」의 죽음은 올 들어 그의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고 심심찮게 사망 선까지 나돌던 뒤의 일이라 소련국민들에게 충격적인 일도 아니고 바깥 세계에도 뜻밖의 사태는 아니다.
그러나 「브레즈네프」라는 소련정치의 한 「거목」이 역사의 장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은 분명히 소련의 국내정치뿐 아니라 그 대외정책, 따라서 국제정치 전반에 걸친 한시대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다.
크렘린의 권력저조에서 볼셰비키 혁명이래 「레닌」, 「스탈린」, 「후루시초프」, 「브레즈네프」가 차례로 차지했던 공산당 제1서기자리에 누가 앉느냐에 따라서 세계의 「정치지도」는 모습을 달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예상으로는 소련이 비밀경찰(KGB) 책임자였던 「안드로포프」(68), 「브레즈네프」의 오른팔 격이던 「체르넨코」(71), 「브레즈네프」를 「대부」로 하는 크렘린 최대의 파벌인 드니에프르 파의 대표자 「키릴렌코」, 모스크바 당 제1서기 「그리신」같은 인물들이 당분간 집단지도체제를 펴나가는 동안에 그 둘 중의 한사람이 제1서기로 부상할 것같이 보인다.
그들 중 「키릴렌코」는 부각 설이 파다한데다가 건강도 사망 설이 나돌 만큼 악화되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세 사람 중에서는 「안드로포프」가 크렘린성좌의 중심위치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체르넨코」가 상대적으로 「안드로프프」보다 약세에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브레즈네프」 생존시 정치국 서열 5위, 실권에서는 「브레즈네프」 다음가는 「황태자」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체르넨코」가 「브레즈네프」의 개인비서에서 「브레즈네프」의 후계자로 각광받는 위치로 출세가도를 달릴 때 「안드로포프」를 비롯한 경쟁자들의 「체르넨코」 견제는 그만큼 가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드로포프」에게는 극복해야 할 두개의 장애물이 있다.
하나는 그가 드니에프르(브레즈네프의 고향지명) 파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크렘린의 실용파에 속하는 「우스티노프」 국방상이 대표하는 군부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스티노프」가 개인적으로는 「안드로포프」를 지지하고 있는 게 후자의 강점이다.
결국 「안드로포프」는 자신이 주도한 권력투쟁으로 실각시킨 「키릴렌코」가 이끄는 드니에프르 파의 지원을 이제는 필요로 하게되었다. 「체르렌코」 계의 믈다비아 파는 드니에프르 파의 한 지류로서 소수파에 속할 뿐이다.
소련의 국내정치와 대외정책, 앞으로의 세계정세에 미칠 영향이라는 관점에서는 드니에프르파와 비드니에프르파 간의 경쟁보다는 교조주의 파와 실용=실무파 간의 권력투쟁이 더 주목된다. 「키릴렌코」와 「우스티노프」의 실용파는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사어보다는 소련의 현실적인 국가이익을 중시한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괴멸시키는 것으로는 소련사람들의 배가 부르지 않는다는 전제로 자본주의가 남긴 문화전체를 파악하여 과학, 기술, 지식, 기능을 배워 사회주의를 건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는 헬싱키 선언이야말로 서방세계의 물질적인 자원과 기술을 사회주의건설에 이용하는 유일의 길을 열어준 것이라고 찬양한다.
반대로 교조주의자들은 벨싱키 선언이 「브레즈네프」가 저지른 큰 실책이요 유러커미니즘은 서방제국주의자들의 발명품이기 때문에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있다.
「브레즈네프」는 소련으 미국과 대등한 군사대국으로 만들고 극동군을 대폭 강화하여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위험의 요소를 등장시켰다. 그 부작용으로 경제적인 난제를 유산으로 남겼다. 이런 배경에서 중-소 화해를 위한 예비회담이 시작되고 북한과의 관계가 미묘하게 되어간다.
우리가 1차적으로 관심 있는 것은 「브레즈네프」 이후의 소련과 한반도 주변정세다. 과도체제아래서 소련의 대외정책이 변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서방세계의 자본과 기술, 자본주의의 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실용주의노선이 중용 되는 선에서 후계문제가 정착되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최소한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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