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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목요일] 노년층 위궤양 늘리는 두통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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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박모(55·경기도 성남시)씨는 지난 8월 식욕 부진에다 심한 속 쓰림 증세를 겪었다. 병원에서 위궤양 진단을 받았다. 술은 적당히 마시고 담배는 입에 대지 않는다. 등산으로 건강을 관리해 왔다. 박씨는 위궤양이 찾아온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병원에서 지목한 원인은 1년 전부터 꾸준히 복용해 온 아스피린이었다. 박씨는 “아버지가 중풍(뇌졸중)으로 돌아가셨는데 주변에서 아스피린을 하루 한 알 먹으면 고혈압·중풍을 예방한다고 권유해 먹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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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피린은 인류가 개발해 상품으로 팔린 최초의 약이다. 두통·치통을 누그러뜨리는 데 효과가 있으며 해열제로 널리 쓰인다. 1970년대 들어 심근경색·뇌졸중 등 심혈관계 질환 예방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용량이 더 늘었다. 현재는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돼 의사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다.

 고용량(500mg)과 저용량(100mg)으로 나뉜다. 고용량은 진통·해열에 쓰인다. 저용량은 심혈관질환 예방용으로 건강한 사람도 비타민제처럼 복용한다. 아스피린이 피를 묽게 해 혈전(血栓·피떡)이 생기는 것을 막아 준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을 앓은 적이 있는 사람에게 재발 방지를 위해 의사가 처방한다. 강모(62·강원도 춘천시)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지난 3월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뇌혈관이 좁아진 것을 발견해 신경과에서 아스피린을 처방받아 복용 중이다.

 전문가들은 여기까지는 아스피린 복용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박씨처럼 일부 중·노년층에서 특별한 증상도 없이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가족 중 심혈관질환이 있거나 심지어 40대 중년층 가운데 가족력이 없어도 비만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스피린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이상길 소화기내과 교수는 “아스피린은 효능만큼이나 부작용도 뚜렷하게 나타나는 약물이란 사실이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부작용이 위·십이지장궤양이다. 최근 아스피린을 장기 복용하면 위궤양을 초래한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3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위·십이지장궤양 환자는 전반적으로 줄고 있지만 70대 이상 노인 환자가 늘고 있다. 건보공단은 원인의 하나로 아스피린을 지목했다. 70대 노인 10만 명당 환자가 2009년 1만974명이던 것이 지난해 1만1893명으로 연평균 2.3% 늘었다. 건보공단 일산병원 소화기내과 전한호 교수는 “국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이 줄면서 소화성 궤양 환자가 줄어들고 있다”며 “다만 아스피린 복용이 노인층의 소화성 궤양 발생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국가건강정보포털도 “노인 인구 증가로 인해 심장질환·뇌혈관질환이 급격히 늘고, 치료·예방제인 아스피린을 포함한 항혈전제와 관절염용 진통소염제 복용이 늘면서 위궤양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2011년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팀이 소화기질환자 810명을 분석했더니 아스피린 복용자(22.5%)가 복용하지 않은 사람(10.5%)의 두 배가 넘었다. 전문가들은 100명 중 5~6명이 위궤양 등의 부작용을 겪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궤양은 피부나 점막의 표면이 손상되는 질환이다. 아스피린은 혈액을 묽게 하는 대신 위 점막을 두텁게 하는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이란 호르몬 생성을 방해한다. 위벽이 약해져 궤양이 생기기 쉽고 피가 묽어져 출혈이 잘 생기는 것이다.

 아스피린을 복용하다 위궤양이 생겨 응급실로 실려 오는 경우도 있다. 삼성서울병원 민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일주일에 1~2건은 꼭 응급실로 실려 오는 경우가 있다”며 “아스피린 복용을 한 지 채 일주일도 안 됐는데 피를 토하거나 위궤양이 생겨 찾아온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증상 없이 심혈관질환 예방 차원에서 아스피린을 습관적으로 먹는 것은 효과도 없고 위장만 버린다”며 “심혈관질환 재발 방지를 위해 먹는 경우라도 속이 쓰린 증상이 있으면 위궤양 예방약을 함께 처방받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꼭 필요한 경우는 아스피린을 복용해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어 신중하게 판단할 것을 주문한다. 서울아산병원 송종민 심장내과 교수는 “뇌졸중을 앓았거나 혈관이 막혀 시술받았다면 재발을 막기 위해 아스피린을 먹어야 한다”면서도 “아스피린은 출혈이나 위장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증상이 없을 때 먹는 아스피린이 사망률을 떨어뜨린다는 근거는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일본 신오야마 시립병원 가즈유키 시마다 박사팀도 지난달 14일 미국심장협회(AHA) 연례 학술대회에서 비슷한 결과를 내놨다. 연구팀은 일본의 1007개 의료기관에서 2005년 3월~2007년 6월 모집한 1만4464명을 5년간 추적 관찰했다. 연구 대상자들은 60~85세로 고혈압·당뇨 중 한 개 이상의 병을 앓고 있었다. 7220명은 1일 1회 아스피린 100mg을 꾸준히 먹었고 7244명은 먹지 않았다. 연구기간 동안 심근경색·뇌졸중이 발병한 비율을 따졌더니 아스피린을 복용한 쪽이 193명, 먹지 않은 쪽이 207명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다.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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