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밀입국 하려다 104명 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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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불법 항해에 나섰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에콰도르인이 17일 콜롬비아 해군 함정에 구조돼 만타포트에 도착했다. 15인승 낚싯배에 113명이 탔다가 배가 침몰하면서 104명이 익사했다. [만타포트 로이터=연합뉴스]

'목숨을 걸고라도 가자, 풍요의 땅 미국으로'.

중남미 서민들의 미국행 발길이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자국에서 먹고살 길이 막막하자 일자리와 돈을 찾아 부자 나라 미국으로 떠나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 불법 입국이다.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국은 불법 이민자들을 차단하기 위해 국경까지 차단, 멕시코와 외교분쟁까지 낳고 있다.

◆ 가자,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11일 밤 콜롬비아와 접경한 에콰도르 북부 만타 항구. 정원 15명의 작은 배에 무려 113명이 올라탔다. 태평양 먼바다로 나간 뒤 북상해 멕시코를 거쳐 미국에 최종 안착한다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다. 그러나 길이가 20m도 안 되는 이 배는 항해에 나선 지 하루 만에 콜롬비아 남서부 태평양에서 침몰하고 말았다. 승선자들은 이틀간 거친 파도와 사투를 벌였지만 9명만이 지나가던 어선에 의해 구조됐다.

5월에는 코스타리카의 태평양 연안에서 페루와 에콰도르 출신으로 추정되는 불법 이민자 88명을 태운 배가 침몰 직전 간신히 구조되기도 했다. 당시 구조된 승선자들은 밀입국 브로커에게 선불로 각각 3000달러를 지급했으며, 미국 입국에 성공하면 7000달러를 더 주기로 약속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1만 달러라는 거금을 주고 목숨까지 걸며 미국행에 나섰던 것이다.

지난해 8월엔 에콰도르 불법 이민자 106명을 태운 배가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던 중 미국 해안경비대에 적발돼 모두 자국으로 송환됐다. 멕시코.쿠바 등에서도 불법 입국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미국 내 불법 이민자가 1000만 명에 이르는데 이 중 절반이 멕시코 출신으로 추산된다.

◆ 막아라, 불법 이민=중남미 사람들이 미국으로 밀입국할 때는 대부분 멕시코를 중간기착지로 이용한다. 미국과 긴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국경 경비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뉴멕시코주는 12일 멕시코 국경을 완전히 차단했으며, 바로 옆의 애리조나주도 나흘 뒤 같은 조치를 취했다.

두 주는 불법 이민자들이 마약.매춘 등 범죄조직들과 결탁해 국경을 넘어와 미국의 치안을 위협하기 때문에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비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은 "이런 조치는 양국의 협력관계를 해친다"며 즉각 시정을 요구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특히 2001년 9.11 테러 이후 보안을 크게 강화하면서 국경수비대의 인력을 늘리고 전기철조망 등 장비도 현대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 입국자들의 발길은 줄지 않고 있다. 중남미인들의 미국행이 꼬리를 무는 것은 자국에선 일자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불안정 속에 경제는 뒷전으로 내팽개쳐진 탓이다.

2005 회계연도가 시작된 지난해 10월 이후 지금까지 애리조나주와 캘리포니아주의 국경수비대에 체포된 불법 입국자만 12만2344명에 이른다. 이는 지금까지 가장 많았던 2000년의 10만8000명을 크게 웃도는 수치라고 당국은 밝혔다. 미 이민당국은 2004년 한해 불법 이민자가 7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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