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유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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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 단발(크루 커트) 풍조가 다시 유행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 부모들은 『머리 좀 깎아라』 하고 말하던 것을 이제는 『제발 머리 좀 길러라』하고 애원한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지의 보도에 따르면 20년, 아니면 적어도 15년 동안 남성의 두발스타일을 지배했던 장발은 서서히 퇴각하는 중이다. 그 만큼 단발 풍조는 거세게 몰려오고 있다.
이번에 유행하는 단발은 명칭도 갖가지다. 「버즈」, 「브러시」,「플랫·톱」, 「필리」,또는 「스킨·헤드」라고 한다. 박박 깎은 스킨헤드를 제외하면 모두 크루 커트(crew cut),즉 선원스타일의 짧은 머리로 통일해서 부를 수 있다.
그 머리모양은 이미 우리 눈에 익숙해온 스포츠형 머리거나 짧게 치켜 깎은 상고머리 모양이다.
단발 풍조로의 복귀에 대해 해석도 갖가지다. 첫째가 경제적 이유. 장발은 빗질과 드라이로 잘 매만지려면 25달러가 드나 단발요금은 불과 5달러. 대신 자주 깎아야되는 번거로움이 있긴 있다.
두 번째가 밀리터리 루크 (military look)의 영향. 매스 미디어에서 너무 많이 군쟁소식이 전해지기 때문이라는 것.
세 번째는 「레이건」 행정부의 보수성향. 좀 믿기 어려운 해석이나 백악관 이발사 「밀턴·피츠」씨의 주장이다. 실제로 「레이건」 대통령은 단발 풍조의 유행소식을 듣곤『그거 굉장한 일인데』라고 말했다는 것.
그러나 사람의 눈이 간사한지, 유행의 노??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미 장발에 익숙한 부모들, 특히 여성들은 단발청소년을 보면 『우욱』하고 도망한다.
모드(mode)나 스타일을 지배하는 유행(fashion)은 『자아확장 욕구가 사회적 동조 현상으로』바뀌는 것을 뜻한다. 한사람의 독특한 패션이 어느새 사회 전반으로 번진다는 것.
유행을 나타내는 패드(fad)는 동일집단, 계층 내의 기발한 모양이고 크레이즈(craze)는 사회적 의지를 담은 대유행, 이를테면 행운의 편지, 트위스트 등이 크레이즈에 속한다.
미국의 단발 풍조가 패드에 그칠지 또는 패션으로 정착할지는 아직 의문이나 80연대에 급속히 번질 것만은 틀림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어떨까. 아직도 40대 이상의 부모들은 단발의 정결함과 활달함을 잊지 못한다. 장발남성은 어딘지 모르게 지저분하고, 궁색하고, 나태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머리 좀 깎으라』 는 것이 한국 부모들의 입버릇이다.
상투를 틀 때도 우리는 머리를 단정히 빗겨 올려 꼭대기에 단단히 매어두었지 풀어 해치진 않았다. 산발은 상중이거나 옥사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었다.
60연대 히피가 남긴 유산은 이제 본고장에서도 차차 극복되고 있다. 남성들의 두발모습이 이제 여성과 다를 때가 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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