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전시] 제2의 정체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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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존재감’
그림을 그리고 2주 후 또 다른 새를 보았습니다.
저 새가 또 다른 나겠구나, 생각을 하였지만
전과 달리 마음이 급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것이 좀 더 나다운 것일까란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나든 저 새들이든지.
그다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존재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시선이 있다는 것, 그뿐이어서 좋았습니다.

작은 나무 ‘나를 움직인 변화들’
그림 속의 나무와 집은 모두 혼자이다.
나를 닮았다.
혼자 있던 나무들, 집들, 그리고
각각의 형태들을 모아 한곳에 담는다.
둘이 되고 셋이 된다.
돌아보니 외로움도 친구가 되어 내 품 안에 있다.

제2의 정체성

27일까지 서울 삼청동 스페이스 셀 02-732-8145

아프면 약국이나 병원을 찾아야 마땅한데 여기 모인 환자는 붓을 든다. 그림을 그리면서 아픔을 푼다. 상처 치료를 돕는 치료사도 있다. 치료사는 통증을 느껴 찾아온 이를 내담자라 부른다. 내담자와 치료사는 함께 작품을 만들며 고통의 원인을 찾는다. 미술로 병을 다스리는 미술치료다.

미술 치료는 음악 치료나 춤 치료처럼 예술 활동으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새로운 의술이다. 장애나 질병, 삶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가 미술로 자신을 표현하고 이해하며 창조적 잠재력을 높여 몸과 마음과 정신의 조화를 이룬다. 그 과정에서 길잡이가 되고 일종의 진료 기록부가 되는 것이 작품이다.

'제2의 정체성'은 미술 치료 현장을 소개하는 드문 전시다. 내담자와 치료사가 창작한 작품이자 진료 기록부가 나왔다. 남에게 보이기 어려운 질병의 흔적을 흔쾌히 내보이는 까닭은 미술 치료를 몰라 고통받는 이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에 아직 낯선 미술 치료를 제대로 알리고 개념을 확립하려는 뜻도 담았다.

치료사인 강승아.박은선.윤영인.안정희.김인숙.장은경씨와 짝을 이룬 6명의 내담자는 주로 가명을 썼다. 13일 열린 전시회 개막식도 내담자와 그 가족만을 위한 비공개 한 번, 일반인을 위한 공개 한 번으로 나눠 내담자를 배려했다. 그만큼 어려운 전시회인 셈이다.

강승아씨와 짝을 이룬 '술라 테라'는 자신을 새로 표현했다. 하늘을 나는 새를 그린 내담자는 '감사하군, 설렘의 시선'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환하게 퍼지는 수채화의 색감에 치유의 기쁨이 담겨 있다.

'미술의 힘'을 출품한 박은선씨와 '무명'씨는 미술 치료의 가치를 말한다. "종이 위에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 생각의 끝을 따라 내 안의 생기가 나온다. 붓을 움직여 하루를 세우고 사회 속의 삶을 꾸려간다." 미술의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됐다고 털어놓는 내담자의 작품 하나하나가 명화다.

20일과 27일 오후 3시 전시장에서 미술 치료 특강과 워크숍이 열린다. 최재영 수원여대 교수가 '미술, 그 치유의 순간', 미술치료사 장은경씨가 '나의 길'을 주제로 강연한다.

** 김기찬 사진전
9월 30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
1960년대부터 서민의 삶을 기록한 '골목안 풍경'의 사진가 김기찬씨 연작전. 02-418-1315.

** 홍현숙 전
23일까지
대안공간 풀
도시 환경의 특수한 장소를 옷과 식물을 소재로 여성적이며 민주적 방식으로 변형한 '풀과 털'. 02-735-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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