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항일투사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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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그는 갑신정변때 대필안의 사정을 재빨리 알아냄으로써 독립당의 활동에 큰 도움을 주었고 일본공사관에 연락을 취하는등 활약이 컸다.
그후 독립당의 삼일천하가 무너지자 일본에 망명햇다.
변낙규는 만주에서 항일투쟁에 몸을 바쳐 가문의 명예를 빛냈다. 그는 독립자금마련을 위해 국내에 잠입, 당시 갑부인 왕택준을 위협하고 돈을 얻어낸 뒤 피신하다가 일경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변성옥은 종교와 교육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선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종교교육학을 전공한 그는 귀국한후 연희전문학교교수를 역임하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길림성으로 들어가 길림신학교교장을 지냈다. 그후 일본경찰에 의해 민족주의자란 혐의로 체포되어 2년간 복역했고 해방후에는 입법의원 부의장, 중앙신학교부교장, 한국기독교청년의연합회부회장을 역임했다.
국회의원을 지낸 변광호는 일본조도전대학 경제과를 졸업하고 자유당때 민국당 중앙위원을 역임했으며 부산정치파동 당시 의원내각제를 주장, 끝내 기립투표에 반대해 제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변문은 또 많은 학자들을 배출, 밴태섭씨는 서울대 국사학교수로 있으면서 국내에서 고려사연구에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했고 「고려정치제도사」 「한국사의 성찰」등의 저서를 펴냈다. 변시민씨는 제주대학장을 거쳐 현재 단국대학에 출강중.
우리나라 사회학에 큰 공을 세운것을 인점받아 국민훈장 동백장을받았다. 그의 저서로는 「사회학」 「문화와 사회」 「사회정책」 등이 있다.
서양화가 변시필씨는 변시민씨의일가.
변우창은 고대법대에서의 명강의로 지금도 그의 강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명치대학을 나와 고등고시전형의원과 5·16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기획위원을 지냈다.<글 제정갑기자 사진 양원방기자>

<지명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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