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국회의 기상 걸린 「정치의안」|「해금」등 건의에 의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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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높은 수위의 대정부 질문이 있은 후 이른바 「정치의안」이 정계의 가장 큰 쟁점으로 등장했다.
이 문제의 처리여하에 따라 정기국회의 순항여부가 달려있고 나아가 내년의 야당 전당대회에까지 영향이 갈 전망이다.
도대체 정치의안의 내용은 무엇이며 이에 대한 여야의 속셈은 어떤지.
「정치의안」이란 말은 주로 입법회의가 제정한 이른바 「개혁입법」중 정치관계법률을 중심으로 하는 야당 측의 개정법안과 정치 규제자 해금건의안 등을 통칭하는 것.
우선 민한당이 작년에 제안해 국회에 계류중인 △국회법개정안 △지방자치제 관개법 개정안(2건) △언론기본법 개정안 △정치 규제자 해금 건의안 등을 비롯한 20개 의안과 국민당이 제출한 10개 법안 및 1개 건의안이 논란의 대상들.
민한당은 이중 국회법·지방자치법·언론기본법 개정안과 정치 규제자 해금 건의안 등 4개를 중요 정치의안으로 꼽고 있는데 국회법과 지방자치제 법 개정안은 국민당안과 대동소이하다.
민한당의 국회법 개정안은 상임위예산 심의권부활·상오개의·국정조사권 발동요건완화·발언시간 제한철폐를 골자로 하고 있으며 국민 당안은 모든 의안제출 정족수를 20명(국민당의석은 25석)에 맞추고 있는 것이 특징.
지방자치제 법안은 민한당이 84년부터 서울시·직할시·각도의 지방의회 구성을, 국민당이 83년부터 각급 지방의회 구성을 명문화하자는 것.
또 양곡 관리법과 농·수·축협 법 개정안 및 농·수·축협임원 임면에 관한 임시 조치법폐지안 등 7개는 민한·국민당의 안이 똑같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정부가 추·하곡수매가결정시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농·수·축협관계법안은 단위조합장의 직선제와 조합장의 정당가입금지를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국민당의 정당법 개정안도 바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이밖에 민한당이 제출한 개정대상「개혁입법」은 행형법(재소자 인권옹호) 소송촉진 특례법(상고허가제 폐지) 형소법(검사 인지범죄의 구속적부심 제의조항삭제) 등 인권관계 법률안과 민방위법(동원연령을 50세에서 45세로 인하) 은행법 개정안(대주주소유상한선 10%)등이 있다.
4개의 정치의안에 대한 여야의 주장은 현재로서는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
야당이 정치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제기하는 국회법 개정요구에 대해 민정당은 국회의원을 직업정치인화 하지 않겠다는 새 국회의 정신과 배치되기 때문에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자제문제도 조속히 서울·부산·청주도 등 재정자립도가 매우 높은 곳부터 순차적으로 실시하자는 야당과 평균적인 재정자립도가 낮기 때문에 아직은 이른다는 여당사이에 별로 타협할 틈이 없고 언기법 역시 마찬가지다.
규제자 해금 문제는 야당이 소급입법의 부당성, 기회균등, 국민 화합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여당은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결단 사항인데다 모처럼의 정계안정에 도움이 안돈뿐 아니라 야당 역시 내심으로는 바라지 않을 것이라는 점등을 들어 부가의 입장을 전혀 완화할 기색이 없다.
지금까지 정치의안을 둘러싼 표면상의 여야공방은 대충 이런 정도였다.
그러나 민정당 내부에서는 동참한 파트너인 야당의 고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견도 없는 것은 아니다. 제 5공화국의 틀을 변경시키지 않을 만한 선에서 뭔가 야당의 요구를 들어 줄 것이 없겠느냐는 모색이다.
4개의 정치의안은 결코 들어줄 수 없지만 야당 제안 중 뭔가 하나쯤 받아주어 야당체면을 세워줄 수 있었으면 하는게 민정당의 솔직한 속셈이기도 하다. 이종찬 총무는 농·수·축협임원 임면에 관한 임시 조치법 같은 것은 어느 정도 모순점을 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요컨대 비정치적 「정치의안」중에서 합리적인 것이라면 좋다는 입장. 한 당국자는 『통금해제 건의안 같은 건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좀체 없다』며 「주는 자」의 고충을 피력.
특히 야당 제안을 모조리 거부했을 경우 현 야당지도체제가 받을 타격을 민정당은 우려하는 듯 하다. 민한당 내에 아직은 유치송 총재에 도전하는 세력이 공공연히 결집돼 있지는 않지만 정치의안이 모조리 봉쇄 당할 경우 내년 전당대회에서 유 총재 체제가 몰리게 되는 건 빤하고 그러면 보다 높은 목소리를 낼 사람들이 득세할 우려가 있다는 것. 따라서 야당 온건파에「절망」을 마련해 주고 이에 반대하는 파를 소수화·고립화시키기 위해서라도 뭔가 배려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민정당내에는 『뭐라도 하나를 들어주면 봇물 터지듯 이것저것 다 해달라고 나오지 않겠느냐』는 경계론이 아직도 우세한 게 사실이다.
한 당직자는 15일 정치해금 문제만 해도 묶여있는 사람 중 일부 인사는 지금 당장 풀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일단 한사람이라도 풀고 보면 너도나도 다 풀라고 아우성이 날것은 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민한당 역시 민정당의 「배려」에 은근히 기대를 걸고 있다. 민한당이 현시점에서 가장 탐을 내고 있는 것은 지자제 실시에 관한 정부·여당의 청신호. 이것만 민정당이 들어주면 「공존」의 명분을 찾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유치송 총재는 최근 민정당 외의 정부요로와 빈번한 접촉을 하면서 주로 지자제를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총재의 움직임과 관련, 민한당 당직자들은 차츰 『민정당이 뭔가 하나는 줄 것』으로 확신하는 기색도 보이고있다.
민한당이 최근 정치의안과 별개로 전투경찰설치법·육아교육법등 정부가 제출한 문제법안들을 갑자기 챙기고 있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주목거리.
10월 하순에 열기로 한 3당 3역 회담에 대해서도 민한당 측은 다소 기대를 거는 눈치이나 『별 성과가 없을 것』이라는게 민정당 측의 설명. 민한당의 한 의원은 『민정당이 아무런 보따리도 없이 회담에 응했겠느냐』고했지만 3당 3역 회담은 회담이 아니라 일요일인 오는 야일 3무3역이 골프를 함께 하고 식사를 하면서 얘기 좀 하는 「생각보다는 멀 정치적인」모임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
민정당의「배려」에 한 가닥 희망은 걸고 있지만 민한당도 기본적으로는 민정당의 근본적인 태도변화가 없는 한 목표달성은 어렵다는 것을 갈 알고있다.
더우기 국회서의 토론이나 협상으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일찍부터 느껴왔던 것.
또 관철을 위해 현 상황에서 야당이 투쟁할 수 있는 한계도 갈 알고있다.
그러나 목표달성의 승산과는 별개로 목표달성을 위한「열성」과「방법」은 당내 정치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데 야당의 특수성이 있다.
때문에 유치송 총재이하 당권파들은 기본적으로 정치의안은 국회 밖에서의 정치적 타협으로 결말짓지 않으면 안된다는 인식을 갖고있다. 유 총재가 청와대회담 후속조치를 논의할 3당 중진 회담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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