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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갈기 지겨워 아파트로 이사 김영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찬 바람만 나면, 다가올 겨울에 연탄을 갈일이 끔찍해서 아파트로 이사를 가자고 남편을 들볶았는데 이번에 우연찮게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아파트란 손가락 하나까딱 안해도 밥이 입으로 들어올것같은 요술의 집이었다.
그런데 그 꿈은 이사 첫날부터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맨 끝집이라서 온 북도를 휘저으며 이삿짐을 날라도 누구하나 내다보는 사람이 없는것도 야속했고, 경비실에서 슈퍼마키트 배달원의 생년월일을 기재하고서야 올려 보내는데는 기가 짙렸다.
아침마다 복도를 오가며 세탁물을 맡아가는 세탁소 사람의 외침과 상가에서 고춧가루 1근도 배달해 주는 맹목적인 서비스는 맞지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우리가 언제부터 앉아서 물건을 받고 이볼호청을 한개에 얼마씩 돈을 주고 세탁을 했던가.
장을 볼때도 생산을 몇 번씩 뒤적여보고 김도 장수를 세어야 직성이 풀리는 나에겐 이곳 상인들은 「신속배달」을 모토로 삼아서인지 빨리 빨리 고르고 곧 배달해 주겠다며 등을 미는 것같아 영 개운치가 않다.
주택에 살때는 아이의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지나다 보면 빵집 총각이 갓나온 빵을 진열장에 내놓다가 우리 아이의 손에 따끈한 곰보빵을 쥐어 주기도 하고 야채파는 아주머니는 일산 열무가 방금 왔다며 손짓하기도하고 흰 알루미늄통을 들고 한 손만으로 핸들을 잡고 곡예를 하듯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자장면집 아이가 휙휙 불어대던 경쾌한 휘파람 소리가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모두가 정겨웠던 순간들로 가슴에 와 닿는다.
이런 정다움과 편리함을 고루 갖춘 아파트를 꿈꾸었었는데 나 아니면 남이라는 이기적인 공간으로 떨어진 것 같아 실망했다고나 할까.
또한 엄마의 외출때문에 경비실에서 집열쇠를 찾아가는 국민학교 1학년 꼬마의 뒷모습에서 핵가족이 지닌 차갑고 딱딱한 모순을 느끼기도 했다.
내 주위의 대부분 주부들이 이 겨울에도 연탄을 가느라 추위속에서 종종걸음을 칠 것이 분명한데 연탄 안가는것만 해도 큰 복으로 알지, 무슨 사막이니 모순이니 하며 배부른 투정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도 어쩌면 연탄갈던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워져서 이렇게 트집을 잡는지도 모른다.
며칠전, 밤에 외출을 하고 돌아오다 놀이터를 가로질러 오는데 텅 비어 적막한 모래밭이 한없이 을씨년스럽고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불이 하나 둘 씩 켜지고 꿀벌집같은 한 불빛의 구멍을 차지하고 만족해 하는 우리들이 갑자기 개미처럼 작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가을이면 가을답게 풀벌레 우는 소리라도 들려야 할텐데 아파트란 곳은 귀뚜라미가 못살 곳인지 밤에 귀뚜라미 소리도 들을 수가 없으니 이래저래 아파트란 곳이 삭막하다고 할수밖에. <서울영등포구여의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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