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목판과 씨름하다 30년 세월 훌쩍 갔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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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준권, 증도에서2, 수묵목판, 2014, 39.5×49㎝.

피나무판을 깎아 한지에 수묵으로 찍고 또 찍었다. 겹겹이 번져 나간 산 그림자가 수묵 산수화를 닮은 가로 4m의 판화 ‘산운(山韻)’은 48개의 판을 이용해 51번 겹쳐 찍어 완성했다.

한지에 수묵으로 찍고, 응달에 말리기를 한 달여 반복했다. 판화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은 이곳에서, 이같은 노동집약적 작업을 30년 이어왔다.

 김준권(58)씨가 10일부터 서울 인사동길 아라아트센터 전관 전시 ‘나무에 새긴 30년’을 연다. 홍대 서양화과에 다니던 77년 그린 자화상(유화), 84년 첫 개인전 때 내놓은 ‘오월 광주’ 등 연도별로 5∼6점씩 택해 총 300여 점을 내건다. 동명의 화집도 출간했다. “뭐에 홀렸는지, 가던 길 되돌아갈 수도 없어 여기까지 왔네요. 물기 먹은 한지와 목판에 우리 땅과 사람을 담아내다 보니 30년이 훌쩍 갔습니다.”

 80년대 민중미술의 물결 속에서 목판화를 시작했다. 목판 종주국인 우리네 전통 목판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져 중국·일본을 오가며 판화 공부를 했다. 93년부터 충북 진천에서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진천에 살면서 동네 길, 동네 사람을 담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커다란 이념을 가지고 세상을 보기도 하지만, 동네 고샅길에 감동하기도 하잖아요.”

29일까지. 02-733-1981.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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