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범죄 시효 배제' 논란] 정치권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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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도 청와대와 호흡을 맞춰 '국가기관에 의한 권력남용 범죄의 시효 배제'의 범위를 정리하면서 입법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16일 정세균 원내대표 주재 고위 정책조정회의는 권력남용 행위의 민사상 시효(손해배상 및 보상과 관련)는 배제할 수 있지만, 공소시효(형사처벌과 관련)는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회의 뒤 문병호 법률담당 원내부대표는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형사사건은 처벌하지 않는 게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날 오찬 행사에서 밝힌 입장 후퇴와 맥을 같이 한다. 이 부분에 집중된 위헌 논란 시비를 하루빨리 잠재워 입법에 탄력을 받으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렇지만 공익과 관련된 중대 범죄의 경우 국민적 합의에 따라 공소시효를 배제해 소급 처벌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도 냈다. 상황 변화에 대비해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새로운 법안을 내기보다 지난 7월 이원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반(反) 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안'을 손질하는 길을 택했다. 정세균 원내대표는 이 법안의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법안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살인.고문 등의 행위에 대해 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다.

형사상 소급 처벌은 명시하지 않고,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의 경우 법 시행 전에 공소시효가 소멸됐더라도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또 이날 회의는 지난해 6월 통과된 과거사진상규명법을 보완키로 의견을 모았다. 이미 법원의 확정 판결이 난 과거 국가기관 불법행위 사건의 재심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하겠다고 한다. 문 의원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과거사 재심의 기준과 법원이 판단하는 재심 요건 사이에 괴리가 있을 수 있다"며 "이를 입법으로 보완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 발언이 결국 과거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려는 목적에서 나왔다며 이틀째 맹공을 퍼부었다. 강재섭 원내대표는 "노 대통령이 소급 입법에 대해 말했는데, 이는 국가의 헌정체제와 법률체계를 송두리째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무성 사무총장은 "대통령이 헌법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들을 신중치 못하게 말해 놓고 비판 여론이 나오니까 (소급 처벌은 아니다고) 말을 바꾸는 것"이라며 "말로는 화합하자면서 뒤에 비수를 숨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과거사법의 경우 한나라당은 "현행법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이어서 1년여 만에 다시 논쟁이 달아오를 전망이다.

김정욱.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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