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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국가범죄 시효 배제 특별법' 발언 파문] 법조계 위헌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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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광복 60주년을 맞은 15일 광화문 거리축제에서 국기사랑중앙회 회원 140여 명이 태극기가 그려진 길이 200m의 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의 15일 발언을 계기로 항일 독립운동과 의문사 사건 관련자 등이 국가로부터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릴지가 주목된다. 당시 가해자격인 국가권력과 관련 인사들에 대한 처벌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될지도 관심사다. 일제 강점기, 군사독재 시절에 벌어졌던 부당한 인권 침해 사례들의 대부분이 민사상 배상 청구 기간과 형사상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위헌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 손해배상은 특별법으로 가능할 듯=법조계에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을 연장해 줌으로써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해 배상해 주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특히 국가가 불법행위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현행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불법행위가 발생한 시점부터 10년 이내 또는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내야 한다. 소멸시효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데도 일정기간에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경우 권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민사상 시효를 연장토록 하겠다고 한 것도 이러한 소멸시효를 늘리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국가가 피해를 배상하는 등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는 위헌 논란이 있을 수 없다"며 "특별법 형식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소멸시효의 예외를 인정하면 법적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고, 헌법상 소급입법 금지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형성 성균관대 교수는 "민법상 시효 문제를 건드리게 되면 국민의 생활에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갑배 변호사는 "소급입법 금지 문제와 충돌하지 않기 위해 국가 배상 대신 특별법을 만들어 보상해 주는 방식이 적절하다"고 지적했다.

◆ 공소시효 연장은 위헌 소지 커=그러나 형사상 공소시효를 연장하거나, 중단시키는 것은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는 게 대다수 헌법학자의 견해다. 지금까지 특별법 제정을 통해 공소시효를 연장한 사례는 1995년 제정된 '5.18 민주화 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유일하다. 권형준 한양대 교수는 "특별법을 제정해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에 대해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소급 금지의 원칙과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황도수 전 헌법재판소 연구관도 "5.18 사건은 전체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한 반인륜적인 범죄라는 특수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5.18 특별법의 경우 96년 2월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5명이 "법치주의에 위배된다"며 위헌 의견을 냈었다.

하재식.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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