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야당, 룰라 탄핵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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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브라질 야당들이 잇따른 정치권 비리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실바(사진)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발의를 추진하고 나섰다. 민주노동자당.사회주의대중당.녹색당 등 야3당은 12일 긴급회동을 열어 15일 브라질사회민주당.자유전선당과 함께 탄핵 발의를 위한 협의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앞서 룰라 대통령은 12일 TV 연설을 통해 대국민 사과성명을 냈다. 룰라는 "의회에서 협조해주는 대가로 야당 의원에게 매달 1만2000달러를 건넨 집권 노동자당(PT)의 행위는 부적절했다. 그러나 나는 전혀 몰랐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야권은 "룰라가 반성하는 빛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강경 대응에 뜻을 같이했다.

이날 발데마르 다 코스타 네토 전 자유당 총재가 "2002년 대선 때 룰라 후보를 지지하는 조건으로 PT에서 불법 선거자금 400여만 달러를 받았다"고 밝힌 주간지 인터뷰가 공개되면서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네토 전 총재는 "당시 (선거자금) 액수를 합의할 때 룰라 후보는 (합의를 승인하기 위해) 바로 옆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열린 의회 국정조사위원회에서는 룰라 캠프의 미디어 담당 보좌관이 "대선 당시 PT 비밀계좌로 불법 선거자금 325만 달러가 입금됐다"고 증언했다. 뉴욕 타임스는 "최악의 경우 PT의 정당 등록이 취소될 수 있다. 내년 대선에서 룰라는 무소속으로 나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룰라는 내년 대선에서 2차투표까지 갈 경우 조제 세하(상파울루 시장)에 9%포인트 차로 질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결과가 룰라의 패배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무산자 계급의 아들'임을 강조하며 대중적 인기로 버텨온 룰라가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됐다. 탄핵 발의가 실제로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모른다"고 발뺌하며 자신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룰라의 전략이 생각대로 먹히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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