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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기획 무료 노인시설의 그늘] 中. 서글픈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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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 자유로운 외출도, 이렇다할 여가거리도 없는 요양원. 치매 노인들의 일과는 세끼 식사와 목욕이 전부다. 하루 종일 방에서 자는 할머니들.

박영이 할머니가 숨어서 운다. "아이고… 젊다고 나를 괄시하네…." 73세의 할머니는 방금 50대 원장에게 야단을 맞았다. 자신을 때린 할아버지를 고자질하다 되레 혼이 난 것. "질질 짜지 말라고 했지! 방에 들어가 있어!" 고함소리에 할머니는 "예"하고 힘없이 대답하고 돌아섰다.

직원들은 노인에게 일상적으로 반말을 쓴다. '친근해서'또는 '좋게 말하면 통제가 안 되니까' 등 이유가 다양하다. 손찌검도 한다. 목욕시간이 대표적. 35명의 할머니를 목욕시키는 직원은 두세 명이다. 호통이 난무한다. 순길(69) 할머니는 "화장실 좀 갔다오겠다"고 했다가 "여기서 싸!"라는 소리와 함께 얼굴에 바가지째 물세례를 맞았다. 탈의실에서는 또 다른 할머니가 등짝을 맞는다. "그냥 입으라는 옷 입어!"

취재팀이 한 노인 요양시설에서 일주일 동안 자원봉사를 해보니 언어.신체적 폭력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02년 실태조사에서도 무료 요양시설 거주노인의 7%가 직원으로부터 폭언.폭행을 당했다.

깨끗한 옷을 입거나 몸 상태에 맞는 식사를 하지도 못했다. 목욕을 마친 노인들은 탈의실 한편에 쌓여있는 옷 중 하나를 골라 입는다. 성별 구분이 있을 뿐 속옷까지 공용이다. 키가 150cm 될까말까하는 금순(75) 할머니는 고무줄 바지 밑단을 세 번이나 접었다. 노인 1인당 한 해 13만2500원의 피복비가 나오지만 성한 옷은 전체의 반도 안 된다. 호주머니가 찢어진 바지도, 용변 색깔이 남아있는 팬티도 예사다.

식당에서는 식단표대로 밥이 나오지 않는다. 야채전 대신 가지나물이, 고등어무조림 대신 카레밥이 나오는 식이다. 최근에 미역을 대량 기부받은 뒤로 식단에 없던 미역 된장국이 한 주에 세 번 식탁에 올랐다. 건강 상태도 식단에 반영되지 않는다. 당뇨.고혈압을 앓거나 이가 없어도 모두 같은 음식을 먹는다. 이가 성치 않아 열무 겉절이나 코다리찜을 남기는 노인들도 있다.

건강한 노인에게는 외출 통제가 가장 큰 고통이다. "요양원 바깥에 나가 본 지 두 달 됐다"는 윤재규(73) 할아버지는 "맛있는 것 사 먹으러 나가고 싶은데 답답하다"고 털어놓았다.

심한 풍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박선호(67) 할아버지는 삼 개월째 누워 천장만 바라보는 신세다. 할아버지가 침대를 떠나는 것은 주 3회 목욕 시간뿐. "옛날엔 가끔씩 휠체어 타고 마당에 나가고 했었지. 이렇게 살다 죽을 텐데 다른 사람 폐 끼쳐서 뭐해." 항상 같은 자세로 누워있다 보니 엉덩이에 욕창이 생겼지만 주기적으로 자세를 바꿔주거나 마사지를 해 주는 사람도 없다.

국가인권위 김수원 조사관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자유롭게 외출할 수 없는 상황 모두 헌법이 정한 행복추구권과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대부분의 노인이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어 상황은 더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탐사기획팀=정효식.임미진 기자, 박경훈(서강대 신문방송 4년).백년식(광운대 법학 2년) 인턴기자

제보=e-메일 전화 02-751-5644

※인권 보호를 위해 모든 노인의 이름을 가명 처리했습니다.

※8월 11일자 시리즈 1회에서 인용한 임춘식 교수는 한림대가 아니라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이기에 바로잡습니다.

직원 1명이 10여 명 수발 … "너무 힘들어" 간병인들 줄사표

▶ 취재팀은 노인요양시설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전남의 한 요양시설에서 일주일간 자원봉사를 했다.

50여 명의 노인이 살고 있는 전남의 한 무료 요양시설. 매주 600여 벌의 옷과 300여 켤레의 양말이 세탁장에 나온다. 용변을 가리지 못하는 노인들 때문에 이불 빨래도 만만치 않다. 빨래와 함께 노인들의 머리 손질을 직원 한 사람이 맡는다.

세탁장에서 만난 이모씨. 빨래와 이.미용을 맡아 온 그는 결국 최근 사표를 냈다. "물먹은 이불을 옮기다 목 디스크에 걸렸다"는 그는 "일년 반 동안 봉사한다고 생각하며 참았는데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말했다.

어디선가 고약한 냄새가 난다. 중풍에 걸린 할아버지가 방에 누워서 대변을 본 모양이다. 남자 간병 직원이 눈치를 채고 일어난다. 대변 냄새에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는 경지에 이른 그는 "냄새 좀 날테니까 참으라"며 오히려 취재팀을 걱정한다. 이곳에서는 대소변을 혼자 처리하지 못하는 노인이 열 명이나 된다.

간병 직원은 모두 9명. 하지만 낮과 밤으로 교대하고 휴가 등을 써야 하기 때문에 보통 직원 한 사람이 동시에 10여 명의 노인을 수발한다. 5년차 간병 직원 최모씨의 월급은 130만원. 그나마 월급 외 20만원씩 나오던 시간외 수당은 예산부족으로 올 2월부터 나오지 않는다. "돈 생각하면 이 일을 어떻게 5년이나 했겠느냐"고 쓰게 웃는다.

노인 요양시설 대부분에서 직원 교체가 잦은 것도 힘든 근무 환경 때문. 한 요양원에서는 1년 사이에 간병 직원 8명이 사표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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